모던한 신세계 기괴한 추리극
‘샤알록 홈즈’는 산 사람일까, 죽은 사람일까. 서대문경찰서 강력1반 사환 말희가 형사 홍윤식에게 묻는다. 홍윤식은 입술을 씰룩인다.“그래, 얘기 속에서만큼은 그럴 듯하게 살아 있으니까…그 얘기가 살아있는 한 쉽게 죽을 수가 없겠구나.”
‘조선형사 홍윤식’(9월 2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2관)은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는다. 그게 그에겐 첨단과학이다.1933년 경성 죽청점(서울 충정로)에서 잘려나간 아기 머리통이 발견되자, 홍윤식이 제일 먼저 들여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는 현미경. 그러나 정작 사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이 해결해 준다. 순간, 홈즈의 실재를 부정하던 홍윤식은 말희의 말을 떠올렸을 게다.“그렇지만 도까비는 실제로 있었세요. 봤다는 사람도 있는 걸요.”
작품은 잔인한 소재로 먼저 ‘지르고’ 들어간다. 그러나 사근거리는 말희의 입말이 무거운 주제를 동동 띄운다.‘모단’에 눈떠가는 당시 일상의 세밀화도 볼거리다. 머릿수건 하나 집어던지며 아낙에서 여학생으로 변했다가, 가고시마산 고구마 소주를 훔쳐 달아나는 도깨비로 분하는 세 여배우의 넉살은 훈훈하다. 그대로 극장 밖으로 나가도 손색없을 노숙자 ‘뻐꾸기’의 과장되지 않은 웃음과 언어유희도 좋다.
이렇듯 ‘조선형사’의 외피는 모던보이의 유쾌한 걸음을 닮았다. 거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돈 몇 푼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이 겨누고 있는 지점은 배꼽이 아니라 근대와 전근대, 일본과 한국, 빈부 사이의 모순이다. 새로 생겨난 도시의 흥성거림 속에서도 죽은 아이 묻을 돈이 없어 밤에 몰래 무덤을 파는 하층민이 있다. 본인도 ‘조선놈’이면서 “조선놈들은 닦달해야 말을 하는 습성이 있어.”라며 애먼 노숙자를 잡아패는 형사도 있다.
결말은 생경하지만,‘조선형사’는 장면장면에 깃든 이야기의 매력이 진하다. 홍윤식, 그도 얘기가 살아 있는 한 쉽게 죽을 순 없을 것 같다.‘샤알록 홈즈’가 그랬듯이….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7-07-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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