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견 전용 휠체어 제작자 이신영 님
취재, 사진 이만근 기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지만 휠체어에 의지한 채 15년을 살았던 개 ‘챔프’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챔프!>(2006). 다리를 잃은 개를 위해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전용 휠체어를 만들어준 일본인 미우라 씨와 같은 주인공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태어난 지 5개월이 안 된 아들을 품에 안고 인터뷰에 나선 이신영 씨(34세). 그의 주변엔 한 식구나 다름없는 푸들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늘 정신없이 맴돈다. “하얀 푸들이 ‘씨니’예요. 웹디자인 일을 하던 때 이웃 사무실에 살던 녀석인데 자칭 ‘애견가’라는 주인으로부터 엄청난 괴롭힘을 받아 제가 뺏다시피 입양했죠. 그 주인이 어찌나 밉던지 어떻게든 혼내주고 싶었어요.”

그는 생업과 더불어 ‘아름품’이라는 동물 보호 단체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1인 거리 시위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강단 있게 활동했다. 당시 만난 그의 ‘챔프’가 바로 버려진 개 ‘하니’다. 한눈에도 볼품없는 발바리였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다리까지 절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입양을 기다리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아예 그가 데리고 살게 된 것이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금방이라도 뛰어나와 반길 듯한 눈빛으로 엎드린 채 몸을 비벼대곤 했는데 너무 안쓰럽더라구요. 물이라도 제 힘으로 먹을 수 있게끔 스케이트보드에 태워보기도 했지만 마땅한 도구를 찾기는 힘들었어요.”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장애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모아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순전히 제가 외로워서 그랬죠. 우리나라는 장애 동물들을 대부분 안락사시키는데 끝까지 그 생명을 버리지 않고 품에 안고 사는 사람들끼리 위로가 필요했어요.”
수소문 끝에 가까스로 미국에서 제작한 휠체어 견본을 구할 수 있었고 즉시 하니를 위한 휠체어 준비를 시작했다. 공업사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부탁했지만 남는 장사가 아닌지라 모두 거절했고 급기야 좀처럼 잡아보지 않았던 망치와 펜치를 직접 들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알루미늄, 스테인리스강, 고무바퀴를 구해 며칠간 구부리고 조이며 다듬어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하니는 휠체어를 타보지도 못한 채 동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게 부질없어졌지만 그는 또 다른 하니를 위해 휠체어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한국장애동물연구협회 사이트를 개설하여 무료로 선물한 휠체어와 재료비만을 받고 제작해서 보급한 휠체어가 그새 백오십여 대에 이른다. 덕분에 양 손목이 시큰거리는 후유증을 안고 살지만 그동안 휠체어를 받았던 ‘단오’ ‘줄리엣’ ‘반이’ 등의 이름을 되새기면 무척 흐뭇하다.
남편 김재혁(35세) 씨는 아들 지원이가 태어난 날을 잊지 못한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바로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집으로 달려갔는데 자기 몸 챙기기는커녕 보내줘야 할 휠체어가 두 대 있다며 포장해서 보내놓고 병원에 가자고 하더군요. 아파서 신음하면서도 휠체어 챙겼던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나요.”
이신영 씨는 이제 산후 조리가 끝나고 아픈 손목이 좀 나아지면 다시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제가 없어도 이 일을 대신할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라요. 돈 남는 장사를 해도 좋으니 미국처럼 휠체어 제품이 정식으로 만들어지기만 해도 좋겠어요.” 앨범 사진 속 하니가 금방이라도 웃으며 힘껏 그에게 뛰어오를 것만 같다.
월간샘터 5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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