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맞고 쩔룩거리며 보낸
글 이유경 시인, 본지 편집주간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지긋지긋한 한 해’로 손꼽히는 경우는 올해 말고 한 번이 더 있었던 것 같다. 50여 년 전 일이다. 세월의 간격이 있긴 하지만 사안의 힘겨웠던 과정은 둘 다 비슷하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그 첫 힘겨웠던 경험은 나에게 달콤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마음의 양식으로 남아 있다.
첫 번째의 것은 내가 열세 살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무렵이었다. 나에게는 여덟 살 위의 형이 있었는데 그가 부산에서 고교 졸업반을 다녔다. 시골의 가난한 우리 집은 아들 둘을 도시로 유학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 해 ‘재수’의 고역을 치르게 된 것이다.
동급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나는 패잔병처럼 남아 시골 골목과 들길을 고개를 푹 꺾고 헤매 다녔다. 지겨운 1년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고독한 방황’이 훗날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물을 들여다보고 언어를 생각하고 표현의 길을 홀로 모색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올해의 것은 날벼락이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 역시 ‘날벼락 같은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혹은 나를 비켜가는 어떤 경험 세계라고 생각해 왔었다.
처음 나는 실제 이 날벼락 같은 상황을 당하고, 한동안 어처구니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아픔이 몰려왔을 때야 비로소 ‘당했구나!’했으니까.
지난 3월 1일 저녁 무렵이었다, 독일 월드컵축구를 앞두고 가나와의 시범경기가 서울 상암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나는 서두르며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개천의 좁은 다리를 지나가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트럭 바퀴에서 튕긴 철판이 느닷없이 나의 오른 쪽 대퇴부를 강타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풀썩 주저앉은 나는 찢겨져나간 바지 사이로 부러져 삐죽이 튀어나온 나의 허벅지 뼈를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했고 마침 집에 와 있던 딸아이를 휴대폰으로 불렀다. 사고 난 지점은 집과 가까운 거리였다.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입을 모아 “기어이 올 것이 왔구먼!”했다. 나는 몰랐는데, 철판은 그때까지 흉물로 방치돼 ‘사건’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급차가 와서 현장을 수습하고, 진통제로 의식을 뺏은 나를 병원으로 싣고 갔다. 응급실에서 4시간 동안의 대수술을 받은 나는 그때부터 한 달을 깁스한 상태로 입원실에서 시간을 까먹어야 했다,
병원 정형외과에 장기 입원해본 사람은 안다. 우울한 병실의 침묵과 창백한 견딤의 지루함을! 그것은 몸속으로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아픔을 삼키고 있는 자의 형이상학적 자화상일 것이다. 상대방을 외면하고 자아만을 들여다보는, 외로운 시인과도 같은 모습 말이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그 한 달 동안 병원 휴게실의 무미건조한 풍경 속에서 봄을 맞았다. 병실에선 다른 사내의 앓는 소리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누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실려서, 쇠막대기 같이 무거운 한쪽 다리를 수습해가며 휴게실의 새벽 한두 시간을 나는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퇴원해서도 6개월 동안을 나는 지팡이 신세를 지고 있다. 나이 때문인가, 손상된 뼈와 근육이 쉽게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지고 있다는 징조와 희망사항이 금방 무너지거나 아픔으로 앙갚음해 오던 적이 부지기수였다. 밤중에 오는 가느다란 통증은 감당하기가 힘이 드는 적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지팡이 신세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지대가 조금 높은 곳의 아파트다. 이게 나에게 말썽을 부렸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을 걷는 것이 더 힘겨웠고, 그래서 수습돼 가던 뼈와 근육의 조화를 손상시켰는지, 염증은 없으면서도 부상 입은 다리가 붓고 걸으면 통증이 재발하곤 했던 것이다.
담당의사는 다시 한 달 동안 목발을 권했다. 근육운동을 않았던 다리는 더욱 불편해졌고, 통증도 여전했다. 한 달 후로 예약한 날짜에 갔더니 의사는 많이 좋아졌다면서 다시 한 달 동안 목발 짚기를 명했다. 그 한 달이 다 가고 있는 지금에도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나거나 쉬고 나서 걸으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지방도로에서 당한 이 사고에 대해 지방 보상심의위원회는 보상을 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지방관청이나 국가가 만들지 않은 길에서의 사고에 대해선 관리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판례를 내세우고서였다.
걸어 다니지 않아도 아프고, 열심히 걸어도 아픈 이런 불편의 악순환에서, 나는 올해 안에 벗어날 수 있을까?
지겹게 긴 2006년이여, 제발 어서 가버려라!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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