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두 사람의 우정은 바로 별시해가 열렸던 성균관의 부문 앞에서 보여준 정철의 따뜻한 배려에서부터 싹튼 것이었다.
눈을 끔쩍끔쩍하면서 율곡의 유건을 벗기는 뛰어난 임기응변을 통해 율곡은 사면초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문장인 천도책(天道策)을 시지(試紙)를 통해 과거시험의 답안지로 써 올림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철은 율곡의 평생 은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은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을 쌓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되었는가. 문묘에 출입하여도 무방하겠는가.”
정철은 크게 웃으며 유생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하였다.
율곡을 에워싼 유생의 무리들도 이제 더 이상 떼를 쓸 수는 없음이었다. 그러나 패거리의 우두머리였던 파락호는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는 듯 손으로 먼지를 털며 대답하였다.
“좋다. 네 놈이 과장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겠다. 하지만 현제판이 가까운 앞자리에 앉아서는 아니 된다. 여봐라.”
그는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선접꾼들을 쳐다보면서 소리쳐 말하였다.
“부문이 열리거든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모든 유생들이 출입한 뒤에 이 자를 맨 나중에 들여 보내도록 하거라. 만약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들어가려 하거든 당장이라도 태질하여 쫓아내 보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예에-”
건장한 선접꾼들이 굽실거리며 대답하였다.
원래 계급사회에서 선접꾼과 같은 상민들이 양반집 자제의 행동을 막거나 행패를 부리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엄중한 죄였으나 명령을 내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삽시간에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마침내 부문이 열리고 과장이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유생들이 한꺼번에 부문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문을 지키고 있던 수협관들은 한사람씩 한사람씩 엄격하게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시험에는 부정부패가 따르는 법. 하물며 입신양명을 향한 절호의 기회가 보장되는 과거시험에 있어서야.
인간이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한 방법이 총동원되었는데, 예를 들면 예상답안지를 미리 만들어가는 것, 시험지를 바꾸는 것,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를 주는 것, 입고 가는 옷 안쪽에 사서삼경의 내용을 깨알같이 적어 커닝페이퍼를 만드는 것, 합격자의 이름을 바꿔치는 것, 출제자와 채점자가 공모하거나 서리를 매수하는 것, 특정 정파가 자파세력에게 의도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거나 친인척을 뽑는 것,….
특히 재미있는 것은 마치 오늘날 수험생들이 휴대전화와 최첨단 전자 장비를 동원하여 부정시험을 치르듯 과거시험에도 첨단기술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는 점이다.
‘숙종실록’에는 당시로서는 이러한 부정방법이 나오고 있다.
숙종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성균관 앞 반촌(泮村)의 한 아낙네가 나물을 캐다가 땅에 묻힌 노끈을 발견한다.
2006-03-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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