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질 무렵, 낯선 마을에 들어서도 밥짓는 향기가 가득한 마을은 따스해 보인다. 거기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먹던 음식, 내 어머니의 솜씨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래도 음식맛이라면 ‘남도’를 으뜸으로 치게 된다. 남도 중에서도 순천은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은 곳이다. 특히 이맘때 순천은 짱뚱어가 맛있는 철이다. 겨울잠을 자러 갯벌로 들어가기 전의 짱뚱어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이다. 가을에 떠나는 남도 별미여행, 일단 속을 헛헛하게 비웠다. 맛있는 음식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자꾸 입에 가득 침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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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낮과 노을 순천만의 낮과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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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낮과 노을
순천만의 낮과 노을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아무리 짱뚱어가 손짓해도 해지는 순천만을 놓칠 수는 없는 일. 일단 대대포구로 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배를 타고 나간 순천만은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썰물에 드러난 광활한 바다의 속살, 갯벌과 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의 수로, 군데군데 동그랗게 자리잡고 있는 갈대와 보랏빛의 칠면초, 다가가면 푸다닥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을 추는 이름모를 철새들의 군무,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빠알간 저녁놀까지 누구나 10대의 문학소년·소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왼쪽의 여수반도와 오른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여 드넓은 순수한 갯벌인 순천만에서 해안까지 펼쳐진 갈대군락이 무려 5.4㎞. 유기물이 풍부한 탓에 조개, 갯지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갯벌은 철새들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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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주변에 있던 갈대밭에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갯벌에서 자리잡아 갈대군락이 이뤄졌다는데 이상하게도 갈대밭이 동그랗게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원형의 갈대밭은 마치 세포증식을 하듯 합쳐져 타원형에서 더 큰 원형으로 커져가고 있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자 앉아 바다와 파도와 갈대와 철새들과 친구하며 앉아 있고 싶은 곳이다.
가는 길 :서순천IC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순천시내와 청암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818번 지방도를 타면 순천만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대대포구는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기 쉬우므로 대대마을에서 길을 반드시 확인할 것.
대대포구에는 순천만을 돌아보는 유람선이 운행중이다. 보통 6명 기준으로 3만원을 받는다. 대대포구에서 순천만을 따라 해안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된다. 대대포구 어촌계장(019-605-0511)에게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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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맛이 일품인 짱뚱어 구이와 전골(오른쪽). 살아있는 짱뚱어로 만드는 요리로 이맘때가 제일 맛있고 영양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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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맛이 일품인 짱뚱어 구이와 전골(오른쪽). 살아있는 짱뚱어로 만드는 요리로 이맘때가 제일 맛있고 영양이 풍부하다.
바닷가에서 두어 시간 놀다 보니 배가 출출해져서 그만 짱뚱어를 맛보러 일어섰다. 짱뚱어 요리를 잘 한다는 해돋이 가든(061-742-8745)으로 갔다.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좋지만 친척들이 직접 잡아오는 짱뚱어를 쓰기 때문에 맛과 신선도가 최고다. 짱뚱어는 요즘 가격이 많이 올라 보통 마리당 2000원선이라고 한다. 구이는 잘 달군 프라이팬에 짱뚱어 애(내장)를 복아 기름을 만들어 굵은 소금과 함께 짱뚱어를 굽는다. 고소한 맛이 별미. 짱뚱어전골 또한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 호박과 시래기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한 후 살아있는 짱뚱어를 넣고 끓인 전골은 구수하다. 소화가 잘 되고 영양가도 풍부한다. 보통 4인 가족 기준으로 3만 5000원.
마침 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리고 있는 낙안읍성으로 가봤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음식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낙안읍성 안에 설치된 천막에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장식된 음식들이 즐비하다. 연포탕, 생각촉김치, 붕장어회, 미역수제비, 돔배젓…. 듣도 보도 못한 남도의 음식들이 즐비하다. 또한 스님들의 발우에 정갈한 나물과 떡 등 선암사 사찰음식도 눈길을 끈다.‘눈’으로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입’으로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난전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을 사다 먹어봤다. 저절로 ‘역시 맛은 남도야!’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 배를 채웠다가는 낙안 팔진미를 먹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낙안읍성은 전시를 위한 민속마을이 아닌 사람들이 그곳에서 먹고 자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짚으로 엮어 만든 초가집 사이로 빨간 감이 열린 돌담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해질녘이면 초가지붕 옆 굴뚝에서 모락모락 저녁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울타리에 호박꽃, 지붕 위에 주렁주렁 커다란 박이 열리는 곳. 어린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던 추억을 깨워주는 고향마을 같은 곳이다.
낙안읍성의 초가에서 하룻밤 묵으면 밤에는 온갖 풀벌레소리에, 새벽에는 성 안팎에서 주고받는 수탉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해뜰 무렵 높이 약 4m, 둘레 1.4㎞의 성벽을 산책하는 것도 운치있다. 성벽을 한바퀴 돌아보면 초가지붕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낙안읍성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황금빛 논과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감과 어우러진 가을아침 풍경이 넉넉함을 준다.
●남도음식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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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출품한 ‘연포탕’과… 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출품한 ‘연포탕’과 갖가지 음식들이 먹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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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출품한 ‘연포탕’과…
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출품한 ‘연포탕’과 갖가지 음식들이 먹음직스럽다.
오는 25일까지 열리는‘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남도 22개 시·군에서 우리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700여종의 음식과 송광사, 선암사 등 사찰음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한솥밥나눔행사, 떡만들기, 홍탁 삼합 체험 등 다양한 참여 이벤트와 줄타기 공연, 짚물공예, 야외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곁들인다.
낙안읍성에 가면 주막 평상에 앉아 낙안 팔진미를 먹어 봐야 한다. 낙안팔미는 더덕무침과 조기, 표고버섯 무침, 녹두부침개, 도토리묵, 꼬막, 돼지고기, 게장 등 갖은 반찬에 남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반찬이 바뀐다.1인분 1만원. 동동주는 5000원.
찾아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종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송광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27번 국도를 타고 약 10㎞ 가면 된다.낙안온천(061-753-0035)이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좋다. 유황과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된 국내 최고의 온천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5000원.
●조계산과 보리밥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산중에 정말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 찾아갔다. 조계산(884m)은 남동쪽에 태고종 고찰 선암사, 북서쪽에 조계종 송광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조계산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길로 해발 600고지에 문제(?)의 보리밥집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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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보리밥집의 반찬은 ‘웰빙’ 그자체이… 조계산보리밥집의 반찬은 ‘웰빙’ 그자체이다. 또한 조경이 아름다운 선암사는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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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보리밥집의 반찬은 ‘웰빙’ 그자체이…
조계산보리밥집의 반찬은 ‘웰빙’ 그자체이다. 또한 조경이 아름다운 선암사는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선암사로 해서 보리밥집을 들러 점심을 먹고 송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 선암사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무지개모양의 다리가 나온다.‘야 멋지다’하는 생각에 다가가서 보니 보물 400호 승선교였다. 최근 보수공사를 끝내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주문 앞에는 불교의 심오한 정신을 담고 있는 조그마한 연못인 삼인당. 천년고찰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선암사로 들어섰다. 삼층석탑, 푸른 하늘이 처마 끝에 걸려 있는 대웅전, 야생차밭 등 볼거리가 많다. 꼭 들러야 할 곳이 ‘해우소’다.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노래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이 해우소는 몸 속의 오물뿐 아니라 세속의 욕심과 번뇌까지 버리고 돌아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하다.
보리밥을 먹기 위해 가야 하는 굴목이재 산행은 6.7㎞, 보통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선암사 들머리에서 ‘송광사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섰다.15분여를 걷자 길 왼쪽에 쭉쭉 뻗은 편백나무 휴양림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온갖 나무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냄새를 맡으며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오래간만에 흙을 밟으며 걷고 또 걸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른다. 계곡가에 앉아 땀을 식히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쉬엄쉬엄 올랐다. 배바위 정상까지가 약 1.5㎞인데 1시간이 더 걸렸다. 보리밥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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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에서 내리막길로 15분쯤 가면 조계산 명물인 조계산보리밥집(061-754-3756)이 보인다.1인분에 5000원. 반찬을 담은 작은 접시가 커다란 쟁반에 가득하다. 변변한 밥상도 없다. 누구나가 평상 위에 앉아 쟁반에 놓인 채로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이 집의 맛이다. 돗나물, 참나물, 호박나물, 부추무침 등 갖은 나물들과 멸치젓, 구수한 시래깃국이 나온다. 참기름과 고추장이 담긴 큰 대접에 보리밥과 나물들을 넣고 썩썩 비벼서 한 입 가득 넣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인 동동주 한잔 들이켜보니 부러울 게 없다.“힘들여 올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동주, 야채파전, 도토리묵이 각각 5000원.
보리밥집에서 송광사 갈 때는 반드시 윗길 등산로로 가야 한다. 아래쪽 큰길은 장안마을, 깨금골로 빠지는데 이정표가 없어 헷갈리기 쉽다. 여기서 송광사까지는 3.7㎞로 가득찬 배를 두드리며 천천히 내려가도 2시간이 못돼 도착한다. 계곡물소리, 잡목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걷기에 그만이다. 송광사 경내는 대숲과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법정 스님이 오래 기거하셨다는 불일암도 들러 볼 만하다.
가는길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주암나들목(IC)에서 빠지면 송광사, 승주나들목에서 나오면 선암사다.
●순천여행 팁
순천은 시티투어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순천역에서 오전 9시30분과 10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편안하게 순천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061)749-3328,www.sc.go.kr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2004-10-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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