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가을 김용갑 당시 총무처장관은 설문지를 들고 기자실을 찾았다.하루인 설날과 추석의 공휴일을 이틀로 늘리는 데 대한 찬반 설문조사였다.사상 유례없는 무역흑자 기조가 3년째 이어지고 민주화 욕구가 폭발하던 상황에서 더 놀자는 데 반대의견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틀 후 다시 기자실을 찾은 김 장관은 총무처 직원들과 출입기자들의 90% 이상이 휴일 연장에 찬성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기왕이면 휴일을 3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설날과 추석의 연휴가 느닷없이 사흘로 늘어나게 된 과정이다.
김 장관은 89년 3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중간평가 강행’을 요구하며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하지만 다음날 노 대통령은 ‘중간평가 유보’라는 대국민 선언을 했다.그리고 한달 후 사석에서 김 장관을 만났을 때 안기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자신의 정보로는 중간평가 강행을 기정사실로 알았다면서 설날과 추석의 연휴 확대도 중간평가를 염두에 둔 ‘선거용’이었음을 토로했다.
주5일 근무제(주 근로시간 40시간 단축)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결국 국회로 넘어갔다.2년여에 걸친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에서도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휴가일수와 임금보전 방식에서 끝내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오는 20일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을 토대로 노사 양측의 의견을 절충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한다.노동계는 이에 대해 총파업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다.하지만 주5일근무제의 도입 취지가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설날과 추석의 연휴 사흘을 성역인 듯이 여기고 있으나 ‘탄생’ 과정에서 보듯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선진국 가운데 법정공휴일이 가장 많은 독일과 같이 연 17일인 법정공휴일을 미국(10일),프랑스(11일)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법정공휴일 단축과 휴가일수 문제를 동시에 다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다만 생리 유급휴가와 같은 과보호 조항은 국제기준에 맞게폐지하거나 무급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임금보전 문제에 대해서는 노조가 조직화되지 않은 88% 근로자들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정부안처럼 ‘사용자는 이 법 시행으로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당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할 경우 중소사업장이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노조가 강한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기본급 인상을 통해 임금이 보전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 근로자들에게는 ‘수당’ 형태로 보전돼 시간외수당이나 퇴직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말하자면 노동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노사가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파이를 더 키울 수 있고 분배되는 몫도 더 커질 수 있다.주5일근무제 도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따라서 노동계는 근로자들에게 더욱 큰 혜택이 부여되는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자그마한 부분까지 손해보지 않겠다고 고집해선 안된다.미국의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지적처럼 ‘창조적인 파괴’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자칫하다가는 현금자동지급기,셀프 서비스 주유소,전화자동응답시스템 등에서 보듯 근로자들을 일자리에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과도한 정치논리가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비유로 “정치에서는 꼬리가 개를 흔들 수 있다.”고 했다.정치권의 용기 있는 선택과 결단을 기대한다.
/우 득 정 논설위원 djwootk@
이틀 후 다시 기자실을 찾은 김 장관은 총무처 직원들과 출입기자들의 90% 이상이 휴일 연장에 찬성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기왕이면 휴일을 3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설날과 추석의 연휴가 느닷없이 사흘로 늘어나게 된 과정이다.
김 장관은 89년 3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중간평가 강행’을 요구하며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하지만 다음날 노 대통령은 ‘중간평가 유보’라는 대국민 선언을 했다.그리고 한달 후 사석에서 김 장관을 만났을 때 안기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자신의 정보로는 중간평가 강행을 기정사실로 알았다면서 설날과 추석의 연휴 확대도 중간평가를 염두에 둔 ‘선거용’이었음을 토로했다.
주5일 근무제(주 근로시간 40시간 단축)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결국 국회로 넘어갔다.2년여에 걸친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에서도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휴가일수와 임금보전 방식에서 끝내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오는 20일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을 토대로 노사 양측의 의견을 절충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한다.노동계는 이에 대해 총파업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다.하지만 주5일근무제의 도입 취지가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설날과 추석의 연휴 사흘을 성역인 듯이 여기고 있으나 ‘탄생’ 과정에서 보듯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선진국 가운데 법정공휴일이 가장 많은 독일과 같이 연 17일인 법정공휴일을 미국(10일),프랑스(11일)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법정공휴일 단축과 휴가일수 문제를 동시에 다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다만 생리 유급휴가와 같은 과보호 조항은 국제기준에 맞게폐지하거나 무급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임금보전 문제에 대해서는 노조가 조직화되지 않은 88% 근로자들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정부안처럼 ‘사용자는 이 법 시행으로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당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할 경우 중소사업장이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노조가 강한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기본급 인상을 통해 임금이 보전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 근로자들에게는 ‘수당’ 형태로 보전돼 시간외수당이나 퇴직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말하자면 노동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노사가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파이를 더 키울 수 있고 분배되는 몫도 더 커질 수 있다.주5일근무제 도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따라서 노동계는 근로자들에게 더욱 큰 혜택이 부여되는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자그마한 부분까지 손해보지 않겠다고 고집해선 안된다.미국의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지적처럼 ‘창조적인 파괴’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자칫하다가는 현금자동지급기,셀프 서비스 주유소,전화자동응답시스템 등에서 보듯 근로자들을 일자리에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과도한 정치논리가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비유로 “정치에서는 꼬리가 개를 흔들 수 있다.”고 했다.정치권의 용기 있는 선택과 결단을 기대한다.
/우 득 정 논설위원 djwootk@
2003-08-16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