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이라크 WMD정보 조작’ 제보자 사망 / 블레어정권 정치적 위기

‘英 이라크 WMD정보 조작’ 제보자 사망 / 블레어정권 정치적 위기

입력 2003-07-21 00:00
수정 2003-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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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정보 조작 논란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던 국방부 자문역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죽음으로 블레어 정권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됐다.

켈리 박사의 직접적인 사인은 일단 자살로 추정된다.영국 경찰은 19일(현지시간) 켈리 박사가 왼쪽 손목의 상처로 인한 과다 출혈로 사망했으며 외부인이 개입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그 책임으로 사임 압력을 받고 있고,이라크 공격의 최대 명분이었던 WMD 보고서가 조작됐다는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블레어 총리,조기 귀국 거부

아시아를 순방 중인 블레어 총리는 일본 방문길에 켈리 박사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즉각 사법 조사를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19일 일본 하코네에서 영·일 양국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블레어 총리는 이번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사임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영국 기자의 질문에 굳어진 얼굴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20일 영국 위성방송과 가진 회견에서는 야당의 의회 소집 및 사임요구를 일축했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한·영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블레어 총리는 “중립적인 기관이 적절한 절차를 통해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사건을 판단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또 사법조사가 끝날 때까지 정치권과 언론에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 내부에서는 블레어 총리의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교통부장관을 지낸 글렌다 잭슨 노동당 의원은 이날 “총리는 이번 비극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사임을 촉구했다.보수당은 블레어 총리가 아시아 순방 일정을 조정,가능한 한 빨리 귀국해 이번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BBC도 ‘도덕적 책임’비난받아

BBC방송도 켈리 박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그동안 소식통을 공개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했던 BBC는 20일 켈리 박사가 주요 취재원이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29일 BBC 라디오 방송에서 앤드루 길리건 기자가 영국 정부가 이라크 WMD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6월1일 길리건 기자는 다시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블레어 총리의 측근인 앨러스테어 캠벨 공보수석이 문건 조작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그 내용은 캠벨 공보수석이 “이라크가 45분만에 생물·화학무기를 실전 배치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도록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이틀 뒤인 3일 블레어 총리는 이번 논란과 관련,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고 7월8일 국방부는 정부부처의 군축 자문역으로 활동했던 켈리 박사가 5월22일 길리건 기자를 만났다며 켈리 박사를 BBC방송의 정보원으로 지목했다.

켈리 박사는 이에 따라 지난 15일 의회 외교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조사를 받고는 이틀 뒤 사라져 결국 18일 옥스퍼드셔 자택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켈리박사는 정치적 희생양”의혹도

현지 경찰은 암살 의혹을 일축했지만 켈리 박사의 유가족들은 그가 청문회에 나섰던 것을 모욕으로 여겼으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서 정부의 간접적인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영국 언론들도 켈리 박사가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며 그 배후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특히 뉴욕타임스는 켈리 박사가 사망하기 몇 시간 전 한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검은 세력들의 계락’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신문은 또 이 메시지가 영국 국방부와 정보 기관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라크전 정당성 논란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이라크에서 WMD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WMD 보고서 조작 의혹의 제보자가 사망하자 블레어 정부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일각에서는 캠벨 공보수석의 사임을 전망하는 등 블레어 정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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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기자 1fineday@
2003-07-2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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