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사탑의 기회

[씨줄날줄] 사탑의 기회

박재범 기자 기자
입력 2002-09-25 00:00
수정 200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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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여년 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피사의 주민들은 사라센의 함대와 싸워 승리를 거두자 기념물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마을 대성당에 아름다운 종탑을 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斜塔)이다.그러나 흰 대리석탑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1174년 착공했으나 196년만인 1370년 공사를 마쳤다.모래지반을 다지느라 공사 진척이 늦어진 탓이다.

해마다 1㎜씩 기울어 골칫거리였던 이 탑은 1591년 유럽의 이목을 모았다.이 곳 출신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교황청에 맞서 탑에 올라 중력실험을 가진 것이다.삐뚜름한 탑의 기묘한 모습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사람들은 이 탑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올려 놓았다.

이탈리아가 1990년 탑의 붕괴를 우려해 비공개를 결정하기 직전까지 순전히 탑하나만을 보기 위해 피사에는 한 해에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들었다.로마에서 세 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와 관람료로 13달러쯤을 낸 다음,사탑의 294개 계단을 올라가 보고는 만족감에 젖어 다시 로마로 돌아갔다.사탑은 기운 것만 빼면 유럽의 여느 탑과 다름없건만.

이탈리아는 1992년 복구공사를 시작하면서 대단한 이벤트를 마련했다.전세계 토목전문가로 ‘사탑토목위원회’를 구성해 사탑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한 것이다.이들 전문가들은 2500만달러를 들여 지난해 탑을 43㎝ 일으켜 세웠다.

최근 국감자료를 통해 국보인 불국사 다보탑 등 3개 석탑이 해마다 조금씩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화재청의 관리소홀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이에 맞서 문화재청은 탑신 기울기 측정 결과 오차범위여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결국 말싸움의 또다른 소재로 그칠 공산이 크다.

차제에 이들 탑의 기울기를 관심거리로 대대적으로 확산시켜 보면 어떨까.외국 방송이며 신문들이 솔깃할 정도로 말이다.이탈리아가 기울어진 대리석탑과 복원작업 자체를 관광자원화한 것을 벤치마킹해 보면 뭔가 묘안이 나올 성싶다.석탑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잣대도 옆에 세우고 세미나도 여는 등 관광객을 유인하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게 아쉽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2002-09-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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