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역사상 유례없는 열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강준만 전북대 신방과교수는 월드컵 열기의 원인을 스트레스 해소 욕구에서 찾고,이제 정치를 새로운 스트레스 해소 산업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를 생활화하고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이뤄내자면서 ‘노풍(盧風)’을 그 가능성으로 제시한다.강교수 스스로 열성적인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지자임을 공언하기에,그의 주장은 오히려 거부감 없이 들릴 듯하다.그가 “월드컵 광기와 ‘노무현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월간지 ‘인물과 사상’최근호에 쓴 글을 소개한다.
**정치를 스트레스 해소산업으로 만들자
축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월드컵 기간의 축구 광기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 중 스트레스 해소 기능에 주목해 보자.자신조차 느끼지 못하는 억눌린 스트레스,거대한 스트레스 없이 어찌 그 뜨거운 광기가 가능했을까.
월드컵 광기는 질서정연한 광기였다.이는 개인적 스트레스 못잖게 사회·정치·국가적 스트레스도 강했다는 것을 시사한다.전세계에 긍정적인 것을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일부 사람들에게 축구 광기는 애국주의와 공동체의식의 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제 정치가 축구처럼 새로운 국민 스트레스 해소 산업으로 부상한다고 가정해 보자.정치가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다고 가정해 보자.모든 정당의 지구당에 시민들이 들끓고 모든 후보는 순수한 민의에 의해서만 선택된다고 상상해 보자.나는 이른바 ‘노풍’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이제껏 한국사회에 ‘정치’는 없었다.있는 것은 정치를 빙자한 이권다툼뿐이었다.시민들의 뿌리깊은 정치혐오는 바로 거기에서 기인한다.그리고 그 정치혐오에서 소극적 정치참여가 나온다.“나는 정치개혁은 원하지만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하지 않겠다.”
그런 식으로는 정치개혁이 영원히 불가능하다.당당히 정치라는 무대에 뛰어들어라.직접 배우들을 물갈이하면서 기존구조와 관행 자체를 엎어버려야 한다.지금까지의 드문드문한 ‘수혈’이 아니라 전면적인 참여,그야말로 우후죽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개탄하는 일보다 떼거리로 뛰어드는 일이 필요하다.‘순수’한사람들은 정치영역을 ‘비순수’로 간주하며 변두리에만 있겠다고 떼를 쓰지만,밖에서의 지지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정치를 생활화해 보자.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외곬,순수를 가장한 폭력이다.수구신문들의 ‘노무현죽이기’가 바로 그 ‘순수의 잣대’로 이루어진다.그러나 노무현은 순수만으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아는 ‘프로 정치인’이다.우리시대의 많은 정치혐오주의자들과 냉소주의자들이 바로 이 순수를 앞세운 폭력성에 감염되어 있다.
노풍 재가동을 위한 핵심은 ‘투명성’이 될 것이다.‘순수’는 외곬로 이데올로기화할 위험성이 있지만 ‘투명’에는 그런 위험성이 없다.부정부패가 생활화된 우리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것은 우리 모두가 동참해 벌이는 ‘국민사기극’을 뒤엎는 ‘투명성 전쟁’이다.사회의 부패구조,선거의 부패구조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운 없는 공직자·당선자가 쇠고랑을 차면 그제서야 분노하는 뻔한 사기극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배신이 필요하다.정치하는 사람들이 돈 대준 사람들을 배신해야 한다.시민들 또한 그러한 공적 배신을 돕기 위해 행정의 투명성을 계속 요구해야만 한다.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기존의 부패한 사회구조를 계속 운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힐 것이다.
월드컵 광기와 노풍의 공통점은 오랫동안 억눌린 스트레스의 탈출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그렇다면 정치를,그 거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새로운 산업으로 만들어 보자.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를 생활화하고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이루어내자.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리 채수범기자 lokavid@
**정치를 스트레스 해소산업으로 만들자
축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월드컵 기간의 축구 광기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 중 스트레스 해소 기능에 주목해 보자.자신조차 느끼지 못하는 억눌린 스트레스,거대한 스트레스 없이 어찌 그 뜨거운 광기가 가능했을까.
월드컵 광기는 질서정연한 광기였다.이는 개인적 스트레스 못잖게 사회·정치·국가적 스트레스도 강했다는 것을 시사한다.전세계에 긍정적인 것을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일부 사람들에게 축구 광기는 애국주의와 공동체의식의 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제 정치가 축구처럼 새로운 국민 스트레스 해소 산업으로 부상한다고 가정해 보자.정치가 모든 국민에게 개방된다고 가정해 보자.모든 정당의 지구당에 시민들이 들끓고 모든 후보는 순수한 민의에 의해서만 선택된다고 상상해 보자.나는 이른바 ‘노풍’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이제껏 한국사회에 ‘정치’는 없었다.있는 것은 정치를 빙자한 이권다툼뿐이었다.시민들의 뿌리깊은 정치혐오는 바로 거기에서 기인한다.그리고 그 정치혐오에서 소극적 정치참여가 나온다.“나는 정치개혁은 원하지만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하지 않겠다.”
그런 식으로는 정치개혁이 영원히 불가능하다.당당히 정치라는 무대에 뛰어들어라.직접 배우들을 물갈이하면서 기존구조와 관행 자체를 엎어버려야 한다.지금까지의 드문드문한 ‘수혈’이 아니라 전면적인 참여,그야말로 우후죽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개탄하는 일보다 떼거리로 뛰어드는 일이 필요하다.‘순수’한사람들은 정치영역을 ‘비순수’로 간주하며 변두리에만 있겠다고 떼를 쓰지만,밖에서의 지지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정치를 생활화해 보자.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외곬,순수를 가장한 폭력이다.수구신문들의 ‘노무현죽이기’가 바로 그 ‘순수의 잣대’로 이루어진다.그러나 노무현은 순수만으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아는 ‘프로 정치인’이다.우리시대의 많은 정치혐오주의자들과 냉소주의자들이 바로 이 순수를 앞세운 폭력성에 감염되어 있다.
노풍 재가동을 위한 핵심은 ‘투명성’이 될 것이다.‘순수’는 외곬로 이데올로기화할 위험성이 있지만 ‘투명’에는 그런 위험성이 없다.부정부패가 생활화된 우리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것은 우리 모두가 동참해 벌이는 ‘국민사기극’을 뒤엎는 ‘투명성 전쟁’이다.사회의 부패구조,선거의 부패구조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운 없는 공직자·당선자가 쇠고랑을 차면 그제서야 분노하는 뻔한 사기극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배신이 필요하다.정치하는 사람들이 돈 대준 사람들을 배신해야 한다.시민들 또한 그러한 공적 배신을 돕기 위해 행정의 투명성을 계속 요구해야만 한다.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기존의 부패한 사회구조를 계속 운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힐 것이다.
월드컵 광기와 노풍의 공통점은 오랫동안 억눌린 스트레스의 탈출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그렇다면 정치를,그 거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새로운 산업으로 만들어 보자.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를 생활화하고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이루어내자.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리 채수범기자 lokavid@
2002-08-0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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