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초 남북한 유엔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전세계를 향하여 남북관계를 ‘상호 동반자적 관계’라고 규정지은 바 있었다.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별 무리 없이 받아들였으나 몇몇 보수학자들이 6·25의 전범자를 동반자라고 표현한 대통령의말을 어불성설이라면서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김영삼정부에 들어서서는 ‘3단계 3기조통일정책’에서노태우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상호교류·협력’의 단계를 남북한이 적대와 대립의 관계를 청산하였다는 의미에서 ‘화해·협력’의 단계로 용어대체를 하였다.
국정책임자가 남북한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라는 보다 진일보한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이와 같이 우리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라는 역사적 변화를 향한 발전을거듭해 왔다.
최근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식사를 둘러싼 여야간의 논쟁은 마치 대한민국의 국시가 ‘반공이냐 평화통일이냐’라는 과거 5공시절의 케케묵은 국시론을 연상케 한다.이날대통령은 국군장병들에게 막강한 안보력만이평화통일을담보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건만 일부 언론과 야당 그리고 전직 대통령까지 가세하여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을신라와 고려의 통일시도와 동일시하였다고 확대·재생산하면서 정치쟁점화를 재촉하고 있다.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의 발전을 통해 대북우위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성숙시켜온 국민적 역량을 망각한 시대착오적 냉전적 시비로밖에 볼 수 없다.
우리 역사에 존재하였던 분열과 전쟁의 사례로서 신라와고려의 통일시도,그리고 6·25전쟁을 지적하면서 엄청난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통일을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야 함을 강조한 김대중대통령의 치사를 반민족적 범죄집단인 북한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부각시키려는 것은 지나친 침소봉대이다.
건국이래 헌법상 대북정책의 국시(기본원칙)는 반공이 아니라 평화통일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분단국가의 대통령을 무정부주의적 평화외골수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태도는 문맥에 대한 고의적 왜곡은 차치하고라도 상대편 흠집내기라는전형적인 구시대적 정치행태에불과하기에 학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이 기회에 대북정책에 있어서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의 관계에 대하여 분명한 선을 긋는 게 필요하다.
‘햇볕정책’ 내지 ‘포용정책’으로 통칭되는 정부의 통일정책은 확고부동한 안보를 바탕으로 할 때 그 위력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은 상호의존적이며 ‘통일한국’을 향해가는 통일열차의 두 레일이 되는 것이다.이에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을 동일시하거나 통일정책의 안보정책화 경향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통일정책의 안보정책화가 보혁갈등에 있어서 보수적 식견의 정책일 순 없고 양 정책을 상호 대립 개념으로 이해하여서도 안된다.
미국이 소련의 체제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국방정책만의승리가 아닌 탄탄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자신 있고 탄력적인 외교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당시 미국은 미사일 보유의 비교우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통일정책에 해당하는 대소 외교정책에 있어서 경제지원, 록그룹공연·햄버거·코카콜라 등의 문화이식,경제봉쇄정책과 같이 강경 및온건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하였던 것이다.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우리의 대북정책 또한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의 안정적조화와 탄력적 운영이 요청된다.
요컨대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길은 6·25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남북평화교류에있어서 해당부처의 치밀한 준비와 추진에 따른 가시적 성과에 달려 있음을 현 정부는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 헌법학
김영삼정부에 들어서서는 ‘3단계 3기조통일정책’에서노태우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상호교류·협력’의 단계를 남북한이 적대와 대립의 관계를 청산하였다는 의미에서 ‘화해·협력’의 단계로 용어대체를 하였다.
국정책임자가 남북한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라는 보다 진일보한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이와 같이 우리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라는 역사적 변화를 향한 발전을거듭해 왔다.
최근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식사를 둘러싼 여야간의 논쟁은 마치 대한민국의 국시가 ‘반공이냐 평화통일이냐’라는 과거 5공시절의 케케묵은 국시론을 연상케 한다.이날대통령은 국군장병들에게 막강한 안보력만이평화통일을담보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건만 일부 언론과 야당 그리고 전직 대통령까지 가세하여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을신라와 고려의 통일시도와 동일시하였다고 확대·재생산하면서 정치쟁점화를 재촉하고 있다.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의 발전을 통해 대북우위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성숙시켜온 국민적 역량을 망각한 시대착오적 냉전적 시비로밖에 볼 수 없다.
우리 역사에 존재하였던 분열과 전쟁의 사례로서 신라와고려의 통일시도,그리고 6·25전쟁을 지적하면서 엄청난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통일을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야 함을 강조한 김대중대통령의 치사를 반민족적 범죄집단인 북한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부각시키려는 것은 지나친 침소봉대이다.
건국이래 헌법상 대북정책의 국시(기본원칙)는 반공이 아니라 평화통일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분단국가의 대통령을 무정부주의적 평화외골수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태도는 문맥에 대한 고의적 왜곡은 차치하고라도 상대편 흠집내기라는전형적인 구시대적 정치행태에불과하기에 학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이 기회에 대북정책에 있어서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의 관계에 대하여 분명한 선을 긋는 게 필요하다.
‘햇볕정책’ 내지 ‘포용정책’으로 통칭되는 정부의 통일정책은 확고부동한 안보를 바탕으로 할 때 그 위력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은 상호의존적이며 ‘통일한국’을 향해가는 통일열차의 두 레일이 되는 것이다.이에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을 동일시하거나 통일정책의 안보정책화 경향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통일정책의 안보정책화가 보혁갈등에 있어서 보수적 식견의 정책일 순 없고 양 정책을 상호 대립 개념으로 이해하여서도 안된다.
미국이 소련의 체제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국방정책만의승리가 아닌 탄탄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자신 있고 탄력적인 외교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당시 미국은 미사일 보유의 비교우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통일정책에 해당하는 대소 외교정책에 있어서 경제지원, 록그룹공연·햄버거·코카콜라 등의 문화이식,경제봉쇄정책과 같이 강경 및온건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하였던 것이다.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우리의 대북정책 또한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의 안정적조화와 탄력적 운영이 요청된다.
요컨대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길은 6·25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남북평화교류에있어서 해당부처의 치밀한 준비와 추진에 따른 가시적 성과에 달려 있음을 현 정부는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 헌법학
2001-10-0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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