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웅 칼럼] 지식인의 소신·용기·도덕성

[김상웅 칼럼] 지식인의 소신·용기·도덕성

김삼웅 기자 기자
입력 1999-07-13 00:00
수정 1999-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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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최상의 용기를 주소서.이것이 나의 기도이옵니다.

말할 수 있는 용기,행동할 수 있는 용기,당신의 뜻을 따라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일체의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남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마하트마 간디는‘진리 파악’운동을 실천하면서 스스로‘용기’를 다짐하고 기도하였다. 지난 8일 오후‘반민주적 대학정책의 전면 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대회의’소속 대학교수 900여명은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열어‘교육발전 5개년계획’과‘두뇌한국21’(BK21)사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정부 세종로청사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각종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장관’이었다.

대학교수 수백명이 가두시위에 나선 것은 4·19혁명 이후 처음이라 한다.그래저래 이번 교수 시위는 화제가 되고 시국현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대학교수들이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이슈로 거리로 나선 것이 학자의 신분으로 타당한 것인가,그리고 집회장소를 명동성당으로 택한 것이 과연합당한 가를 묻게 된다.

‘BK21’사업은 문제점이 적지않다.일부 내용과 성안 과정이 그렇다.하지만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고등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는 타당하며 필요하다.

한정된 국가 재원으로 공개경쟁을 통해 선별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다.잔칫날 떡 나눠주 듯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대학의 학문연구 수준은 저개발국 수준이다.국내에서 일류대로 꼽히는 서울대학교의 경우 국제적으로 학문연구 수준의 잣대라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게재되는 교수들의 논문편수가 세계 128위에 머물고 있다.서울대가 세계 500대 대학 수준에도 못 든다는 평가는 오래 전 일이다.

이런 현상에는 대학교수들의 책임이 적다고 하기 어렵다.“사실 우리 지식인들은 그동안 원전과 논문의 형식성, 위협적인 이론과 낯선 외국학자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줏대없는 베끼기와 무책임한 짜깁기를 해왔습니다”라는 한‘변방’교수의 고백은 자기 비하의 독백일 뿐인가.‘기지촌 지식인’들의 신민주의(臣民主義)적 행태가 우리 대학을 후진성에 묶어두었다면 지나치다할까.

교수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면서까지 비판하는‘BK21’은 진정 용기 있는 교수라면 설혹 자신의 이해가 따르더라도 내용을 보완하면서 실천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시위에 나선 교수들이 교수 신분과 관련된 교수계약제·연봉제의 완전 철폐,대학 이사회제도 도입 철회,교수협 의결기구화 등 현안과동떨어진 문제까지 들고 나온 것은 순수하지 못한 대목이다.또한 집회장소를명동성당으로 삼은 것도 많은 사람의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종교상이나 시민교통불편의 문제만은 아니다.

‘4·19 이후’처음 있는 대학교수의 집회라면 명분과 시기와 장소가 적합해야 한다.지금이 과연 4·19에 버금갈 만큼 위기의 상황인가,그리고 학생·종교인·정치인·재야인사들이 반독재투쟁을 벌이고 명동성당이 그 중심지가되었을 때 다수의 대학교수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든가.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항의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그러나 비판해야 할 때는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비판하는 것은 용기 있는 지식인의 행동이 아니다.

밀로반 질라스는 ‘신계급’을 논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혁명이 새로운 독재와 귀족계급을 탄생시키는 방향으로 반동화하자 단호한 자세로 그들과 결별하고 추상 같은 비판자로 나섰다.형벌을 예상하면서 그 길을 택한 것이다.이것은 지식인의 전범(典範)이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바칠‘영웅교향곡’을 만들었다가 그가 권력에 눈이멀어 황제에 취임하자 이를 찢고 다시 교향곡을 만들었다. 이것은 지식인의용기다.

공자는 위(偉)의 영공(靈公)이 환자(宦者)와 같은 수레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고 한다.이것은 지식인의 도덕성이다.토크빌은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하여 고발장에 서명한 후 스스로 감옥을택했다.이것은 지식인이 소신이다.우리 지식인들이 소신과 용기와 도덕성으로서 정부정책과 사회현안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지지할 것은 지지할 때대학발전과 국가발전은 가능할 것이다.

주필
1999-07-1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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