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우리 말 살리는 겨레모임’대표] 언젠가 우리 신문에서,태국 아이들이 IMF를 제대로 알고 있는 아이가 25%밖에 안 되고,UFO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아이가 30%나 된다는 보도를,방콕의한 연구소가 조사한 결과라면서 한 적이 있다.나는 그때,우리 나라 아이들을 상대로 해서 같은 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90%는 바른 대답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태국은 IMF 사태가 우리 나라만큼 심각하지않았는가? 그럴는지도 모른다.그런데 나는 여기서 아이들이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참 재미있구나 싶었다.나는 태국 아이들이 그처럼 밖에서 들어오는말을 깨끗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아마 네 살인가 그쯤 되던 때다.우리 집 담 너머엔 과수원이었는데,겨울이면 늘 보는 젊은이가 사과나무 가지를 자르면서 언제나같은 노래를 불렀다.그 노래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독립군가의 노랫말을 고쳐놓은(독립군가는 부를 수 없었기에) ‘용진가’였다.그 용진가 후렴 끝에 ‘청년들아 용감력을 더욱분발해’란 구절이 있는데,그 젊은이가 노래하는 말에서 다른 것은 대강 그 뜻을 느낌으로 짐작하겠는데 ‘분발해’란 말을 알수가 없었다.그래서 ‘더욱 분발해’가 ‘떡분발라’라고 들렸다.떡으로 분을 발라? 참 우스운 노래구나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이 말을 몰라서 제멋대로 유치한 생각을 한 것이라고만치부해버리면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나는 어른들이 하는 말에 대한 아이들의 이런 느낌이야말로 깨끗하고 귀한 것이고,이런 말느낌이 바탕이 되어 그 나라 그 겨레의 말이 생겨나고 달라지고 이어가고 할 때 비로소 그 말은 아름다운 말이 되고 넉넉한 말이 되고 힘있는 말이 된다고 믿는다.나는 나자신이 어렸을 때 가졌던 그 말에 대한 감수성을 많이 잃어버린 것을 슬퍼한다.내가 10년 전에 우리 말에 대해 크게 눈을 뜬 것도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어느 정도 되찾았기 때문이라 깨닫는다.
1999-01-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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