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가는 뜻(張潤煥 칼럼)

금강산에 가는 뜻(張潤煥 칼럼)

장윤환 기자 기자
입력 1998-11-27 00:00
수정 1998-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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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제1진이 ‘무사히’ 귀환한 데 이어 제2진도 제대로 관광을 마치고 돌아왔다.특히 제2진에는 여야 국회의원들도 들어있었다.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 金日成 주석을 만나 금강산 개발에 합의하고 돌아온 게 盧泰愚 대통령 정부 때인 89년 2월의 일이니,실로 9년만에 뱃길로나마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89년 2월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동안 남북관계는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金泳三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94년 7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뻔 했으나 金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되었고,그해 10월 가까스로 제네바 핵합의가 이뤄져 전쟁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상황을 넘긴채 오늘에 이르렀다.

○관광선 보냈더니 간첩선 보내고

올 2월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들어섰고,북쪽에서는 金正日 위원장이 ‘유훈통치’를 내세워 권력을 승계했다.金대통령은 대북정책의 기조로 무력도발 불용(不容)과 화해와 협력을 제시했다.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에 힘입어 鄭명예회장은 다시 두번씩이나 소떼를 몰고 방북했다.그리고는 마침내 금강산개발 합의와 함께 관광선을 띄우게 된 것이다.드디어 한반도에 해빙의 조짐이 보이는가 했더니,금창리 핵의혹 지하시설 문제로 다시 한파(寒波)가 일고 있다.한랭전선(寒冷前線)과 온난전선(溫暖前線)의 혼재 상태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대열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다.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북한은 금강산 관광 제1진이 북한에 가 있는 동안 우리 서해안으로 간첩선을 침투시켰다.그러자 극우세력들은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북한의 대남전력은 적화통일이다.햇볕론을 거둬들이라”는 것이다.북한의 대남전략이 적화통일이라는 주장은 맞다.그러나 적화통일이 현실태(現實態)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따라서 그들은 “햇볕론을 펴려거든 안보태세를 더욱 튼튼히 하라”고 주장했어야 옳다.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철저한 안보태세를 대전제로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통일의 씨앗 뿌리는 정부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마저 거둬들이라는 주장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의미를 잃어버린 마당에 계속 대북 대결정책을 밀고 나가란 말인가. 그래서 국경조차 의미가 없게된 이 지구촌시대에 남북이 다 함께 주저앉자는 말인가.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대화와 침투’라는 대남 이중전술을 가까운 시일에 포기할 것으로 믿어서가 아니다.‘햇볕’이 지닌 속성과 위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북한도 어쩔수 없이 변화하지 않을 수 없고,미미하게나마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평화와 통일의 씨를 뿌릴 때다.금강산 관광도 통일을 향한 하나의 작은 씨앗이다.금강산가는 길이 예사 관광길인가.이산가족의 한(恨)과 눈물,통일의 열망이 서린 길이다.그래서 금강산에 가는 깊은 뜻은 그한과 열망을 묶어 남북분단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라는 데 있다.극우세력은 관광선을 타지 않아도 좋다.그러나 통일의 씨앗을 뿌리는 정부의노력을 방해하지는 말라.씨앗은 언 땅을 뚫고도 끝내 싹을 틔우게 마련이니.<논설고문 yhc@daehanmeil.com>
1998-11-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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