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의 추기경(외언내언)

법당의 추기경(외언내언)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7-12-16 00:00
수정 1997-12-16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스산한 이 계절에 얼어붙은 마음을 풀어주는 한장의 사진이 아침 신문에 실렸다.그 사진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여인도,천진무구한 어린아이도 아니다.못생겼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한 할아버지,가톨릭 김수환 추기경이 그 주인공이다.

김추기경은 14일 열린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 개원식에 참석,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불상앞에 앉아 축사를 했다.“이처럼 아름다운 사찰이도심 한가운데 들어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면서 “길상사가 맑음과 평안의 향기가 솟아나는 샘터로서 모든 이에게 영혼의 쉼터와 같은 도량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길상사 회주 법정스님은 추기경의 이날 방문에 대한 답례로 올해 성탄절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발간하는 평화신문에 기고하기로 약속했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이같은 모습은 참으로 상징적이다.김추기경과 법정스님은 한국 종교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정신적 지도자로서 어지러운 오늘의 상황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셈이다.상호 존중과 관용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이런 뜻 깊은 모습이 한 할머니의 재산 기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밀실정치의 산실이었던 요정 대원각을 청정도량으로 거듭 태어나게 한 김영한 할머니(81)의 시주는 “훌륭한 활동,선행은 사랑의 사슬을 연결하는 고리입니다”고 했던 ‘캘커타의 성녀’마더 테레사의 말씀과 맞닿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게 된 어려운 경제상황과 대통령 선거전으로 우리 모두 마음이 찢기고 메말라졌다.서로 책임을 묻고 헐뜯고 비아냥 거리면서 대립하고 있다.며칠후 새 지도자가 선출돼도 이 수렁에서 쉽게 헤어나올수 없을듯 싶다.

이런 우리에게 길상사 개원식은 한 깨달음을 준다.‘사랑의 사슬’을 연결한 김영한 할머니의 선행과 화합의 한마당을 연출한 김추기경·법정 스님의‘열린 마음’ ‘넓은 가슴’을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한다는.<임영숙 논설위원>
1997-12-16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