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월부터 시작/IMF 한파­위기 초래 배경

외환위기 2월부터 시작/IMF 한파­위기 초래 배경

곽태헌 기자 기자
입력 1997-12-08 00:00
수정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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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원 “달러 고갈 대응” 건의 번번이 묵살/한은,금개법 입법저지 급급… 공론화 실패

미국 및 일본 등 강대국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빌려달라는,국가파산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정책집단의 잘못이 여기저기에 깔려있었다.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의 판단잘못과 고집,재경원 금융정책실의 실책,자신들의 의견을 끝까지 밀어부치지 못한 한은과 재경원 경제정책국의 한계 등이 맞물린 결과다.1월의 한보사태 이후 재계 12위 한라그룹의 좌초에 이르기 까지의 상황을 되짚어 본다.

■현실과 앞을 제대로 보지못한 재경원 금정실=금융 및 외환을 책임지는 금정실의 대응은 너무 안이했다.한은이나 민간연구소 등에서는 외환위기에 대한 대응을 해야한다고 여러번 건의했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해 국민들을 불안케하지 말라”는 면박만 줬다.달러는 계속 고갈돼 갔지만 10월부터 달러에 대해 원화환율이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달러를 낭비해 국가부도는 초읽기에 들어가게 됐다.위기상황이라는 사실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끝까지 알리지 않았다.IMF 협의단에게도 외환보유고를 틀리게 알려줘 IMF는 재경원을 믿지 못하게 됐다.

■금정실과 차이가 없던 청와대 경제수석실=한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김인호 전 수석도 강경식 전 부총리의 생각과 별차이가 없었다.외환위기를 느끼지도 못해 김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도 못했다.한은 출신과 연구소 출신 경제비서관이 경제수석실에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재경원 출신이 모든 것을 하고 있어 재경원과 다른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게 현 비서실 체제다.

■소극적인 한은=한은은 지난 2월부터 재경원과 청와대에 외환위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건의를 해왔다.9월에는 환율변동폭을 넓혀야 한다는 건의도했다.이경식 총재는 11월 초 김영삼 대통령에게 “IMF에 빨리 가는 수 밖에 없다”고 건의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한은은 재경원보다는 위기를 제대로 느끼기는 했지만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못했다.보신주의로 길들여진 탓이 있는데다 금융개혁법안을 둘러 싼 재경원과의 갈등이 두기관의 허심탄회한 논의를 어렵게 만들었다.김대통령은 실제 외환위기가 심각한지를 몰랐고 지난달 28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알 정도였다.한은 실무진에서는 종금사에 대한 문제를 세워야 한다고 9월에 보고했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없던 일도 돼 버렸다.

■견제기능을 못한 경제정책국=경제정책국은 기아사태 직후 기아와 부실금융기관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건의를 강전 부총리에게 수차례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를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금융의 금자도 모르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말”이라는 금정실 관계자들의 말만 들었다.



■고집스런 강 전 부총리=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막판까지 금융개혁법에만 매달렸다.당초 재경원도 11월9일에는 IMF에 자금을 신청해야 한다는 쪽으로 갔지만 금융개혁법이 통과된 후 하겠다고 버텨 신청시기도 놓치고 말았다.<곽태헌 기자>
1997-12-0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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