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거리에 이름을 붙이자/박우서 연세대교수·도시계획학(서울광장)

모든거리에 이름을 붙이자/박우서 연세대교수·도시계획학(서울광장)

박우서 기자 기자
입력 1997-03-01 00:00
수정 199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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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길,곰달래길.모래내길 등 한국적 맛을 풍기는 길 이름이 서울에는 많다.을지로,퇴계로,소월길과 같이 역사적 인물을 상징하는 길도 또한 많다.

그러나 정작 주소를 가지고 집을 찾으려면 큰 문제가 생긴다.수십여채의 집이 같은 번지를 쓰고 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대로변에 있는 사무실을 찾을때도 어려움은 마찬가지이다.짝수와 홀수가 구분된 것도 아니고 한 건물이 몇개의 번지를 같이 쓰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을까? 몇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길 이름을 알 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도로표지판을 보아도 길이름은 없고 시청 또는 구청 등의 관공서나 김포공항,고속버스터미널과 같은 사람들이 흔히 아는 시설물을 중심으로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심하게는 도로표지판 자체가 잘못 표시된 경우도 있다.

○시설물 중심 방향표시

두번째는 우리의 관행에서 나온 문제이다.대충 이 동네 저 동네 정도로만 알고 사용하고 있지 정확한 지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말 중에는 상황적 어려움을 쉽게 넘길수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말들이 많다.「두서너개」,「이삼십분」,「대여섯채」 또는 「아무거나」 등으로 표현하므로 분명한 의사보다는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여 겸양의 미덕을 살리려는 지혜를 엿볼수 있다. 이러한 관행이 일상화되어 정확하게 표현해야 할 때까지도 대충 표현하고 있다.「커피마실래 홍차마실래」라고 물으면 커피면 커피고 아니면 홍차지,「아무거나 주세요」하고 답한다.그래서 물은 사람은 당황할 수 밖에 없다.이런 경우는 방향제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나자」고 한다면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수가 없다.그래서 「교보빌딩 앞에서」라든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라고 해서 지점을 정해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시설물들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대충 경험으로 해결하고 있다.정초에 옛 스승댁을 찾아 갈때도 그 집을 아는 사람을 앞세워 가지 않으면 안된다.남의 사무실을 처음 찾아 갈때도몇 번이고 물어물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

외국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경험한 결과 그들은 큰 길의 왼쪽은 홀수지번을,오른쪽은 짝수 지번을 쓰고 있으며 모든 길에는 길이름을 부여하고 있다.난생 처음 찾아가는 남의 사무실이라도 길이름과 번지만 있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도시계획위원회의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는 길이름을 작명하는 일이다.우리와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고장의 멋을 내는 길이름부터 유명인사를 기리는 길이름,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해서 모든 길의 이름으로 쓰고 있다.큰 거리의 교차로에서 만나자고 할때도 교차로의 「동남쪽 모서리에서」라든지 「서북쪽 모서리에서」 만나자고 하여 분명한 지점을 밝히고 있다.

○정확한 길이름 사용해야

이제 우리도 경험에만 의존해서 살던 선조들의 관행을 벗을 때가 됐다.겸양지덕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것은 분명하게 사용할 줄 알때가 되었다는 말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장의 멋을 나타내는 이름을 거리에 붙여 사용해야 한다.1가,2가,3가 또는 1번도로,2번도로,3번도로 등과 같이 아라비아 숫자도 사용해야 한다.미국의 많은 도시들은 거의 예외없이 「브로드웨이」라는 도로를 가지고 있다.한국의 모든 도시들이 「퇴계로」를 가지면 안될 이유가 없다.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정확한 길이름을 사용하는 습관도 길러야겠다.
1997-03-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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