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민주주의」 향한 장정/문민정부 치적 평가

「안정적 민주주의」 향한 장정/문민정부 치적 평가

이택휘 기자 기자
입력 1995-02-17 00:00
수정 1995-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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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프로그램」 정교하고 일관성 있게

「개혁」의 기치를 높이 걸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된다.정치·경제·사회등 전분야에 걸친 과감한 개혁의 의지를 천명하고 출범하였다.특히 개혁 초년도에 보여준 정치에 있어서의 도덕성의 시현을 위한 노력,이를테면 정치적 지도층의 재산공개라든가 선거법의 대폭개정은 매우 인상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문민정부 출범이래 최근까지 거의 연속적으로 발생한 각종 대형참사와 이 사건들의 사후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관료적 비능률성은 국정전반의 개혁에 한껏 부푼 기대를 가졌던 국민의 정서에 회의의 씨앗을 뿌렸다.그런데 따져보면 문민정부는 30년 가까운 후진국형 권위주의체제의 유산을 고스란히 안고 출범했다.따라서 아무리 개혁의 기치를 드높이 걸고 출발했다고 해도 과연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반적 국정개혁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겠는가.

한세대 가까운 세월에 걸쳐 형성된 후진국형 권위주의체제의 부정적 유산을 빠른 시간안에 효과적으로개혁해야 하는 역사적 부담은 엄청난 것이고,오늘의 한국정치체계의 역량으로는 힘겨운 작업이다.이에 반해 국민의 민주화및 개혁에 대한 폭발적 상승기대는 속전속결의 가시적 성과를 요청하고 있는가 하면,또 한편에서는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기득권층(현재도 계속해서 형성되고 있는 계층)의 완강한,때로는 조직적인 저항이 개혁의 추진을 쉽지 않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민정부는 그 자체로서 정치적 한계를 지니고 출발하였다.

첫째로 3당통합을 통해 거대여당을 형성함으로써 문민정부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3당통합이 구체제의 부정적 유산을 효과적으로 청산할 수 없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최근의 여권내의 정치적 갈등,나아가 정치권의 이합집산의 조짐은 정치적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이는 곧 한국정치의 도덕성 결여로 인식되어 정치에의 불신을 국민적 정서로 확산시키고 있다.

둘째로 바로 그와 같은 정치적 배경이 개혁적 차원에서의 한국민주정치의 제도화의 수준을 전근대적 영역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철저한 법치주의,관용의 원리,그리고 능력(전문성)위주의 인력충원 등의 핵심적 민주주의요소가 정교하게 제도화되어 있지 못하고,또 안정적으로 운영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정당은 아직도 지역당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그래서 정치의 지역성 극복이 한국정치의 과제로 그대로 남겨져 있으며,정치과정의 파행적 운명 또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국가예산의 국회에서의 변칙적 통과는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개혁주도세력의 정치적 충원기반이 취약하고,개혁의 추진을 위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의 준비가 미흡하였다.정치가 곧 통치를 의미하던 시대는 지나갔다.현대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는 「국가관리」를 뜻한다.국가관리는 한개의 집단이나 한개의 정치세력의 관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그러므로 국가관리를 담당하는 현대의 정치적 리더십은 과감성과 더불어 합리성을,도덕성과 더불어 전문성을 갖출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과감한,때로는 혁명적인 개혁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합리적이고 전문적인 개혁프로그램이 정교하게 준비되어야 하고 이를 마련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활용되어야 한다.

민족통일의 문제와 외교·안보문제에 있어서의 일관성있는 정책대안 제시,정치개혁의 지속적 추진,경제개혁과 사회정의를 위한 확고한 기본구도의 마련과 이의 실천,교육및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관료주의적 획일성의 지양과 사회적 낭비의 효과적 억제 등등,문민정부가 합리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단없이 과감하게 추구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개혁의 목표는 「안정적 민주주의」의 정착에 있다.이것이 곧 정치의 선진화와 세계화를 이루는 일이다.「개혁」이라는 명제가 「세계화」라는 명제로 변화했다고 해서 개혁이 완료되었다거나 유보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의 추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문민정부의 정치개혁의 과제는 우선 정치적 리더십에 있어서의 도덕성의 제고이며,정치과정에 있어서 관료적 권위주의를 지양하고 개방성을 확보하는 일이며,국지주의적 정치성향을 극복하는 일이고,광범위한 정치적 충원기반을 확보하고 경륜있는 전문가를 활용하는 일이며,과감하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대안을 준비하고 제시하고 집행하는 일이며,전시효과적 정치·행정의 낭비를 없애는 일이며,지방자치의 기반을 착실하게 마련하는 일이라고 하겠다.내수외연은 복지천년의 민주국가로 가는 바른 길이다.<이택휘 서울교대 교수·한국사>
1995-02-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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