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아는 민족(연변 조선족 1백년:5)

웃음을 아는 민족(연변 조선족 1백년:5)

최인학 기자 기자
입력 1994-11-11 00:00
수정 1994-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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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설움 해학­낭만으로 극복/한글신문엔 배꼽 쥐는 이야깃거리가득

한국인 정서의 근성을 낭만과 해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혹독한 만주벌에 가 살아도 한국인의 근성은 버리지 않았다.이러한 낭만과 해학이 어떤 경로로 정형화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인의 운명관·영혼관이 체념이라는 고리를 항상 달고 다니면서 괴로움과 비통함을 극복하는 장치가 되어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체념의 장치는 해학과 낭만으로 미화되었다.임진왜란때 강제로 일본에 잡혀간 도공들이 기아와 망향의 슬픔을 딛고 삶의 뿌리를 규슈에 내린 것도 이러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고,스탈린에 의해 한국인이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들판에 내던짐을 받았을지라도 그곳에 한국인의 얼을 심어 오늘 꽃 피게 한 것도 근성의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동시에 만주벌의 동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들에게 낭만과 해학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의 중국조선민족이 가능했을까.한국인의 유머는 낭만과 해학의 산물이다.미움이나 증오도 비아냥대며 웃고 넘겨버리는대담성이 한국인에게는 있다.

지난 여름 구비문학학술회의에 참가하려 연변에 들렀을 때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비통한 역사,굶주림의 역사를 웃음으로 대치하면서 오늘의 탄탄한 위상을 확립한 것도 생활사의 승리다.회의가 끝날 무렵,순한글의 타블로이드판 「이야기천지」란 신문 몇부를 받았다.주로 이야깃거리를 담은 이 신문에는 유머 고정란이 있었다.연재물도 재미있었다.신문의 의도는 독서를 통해서 낭만과 해학으로 세파를 이겨가자는 뜻일게다.유머 몇편을 읽어보니 부조리를 웃음으로,사회고발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과정이 조명되었다.

한 공상관리원이 돼지고기 장사꾼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다.

『매일 와서 공돈만 떼 먹으니 너네 공상관리소 놈들은 모두 돼지야』

하면서 욕지거리를 했다.이때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법관이

『인신침해로 벌금 30원을 내야 한다』

하고 명했다.그러자 돼지고기 장사꾼이

『전번에도 「돼지」라고 욕했다가 벌금 10원밖에 내지 않았소』

하며 투덜거렸다.그러자 법관이 말했다.

『이번 벌금은 새로운법률적 근거에 의한 것이오.돼지고기값이 두배나 뛰지 않았소』

○유머로 물가고 꼬집어

유머속에는 물가고의 폭등을 꼬집고 있다.자유화의 물결로 개인상업이 보장되면서 상점세 또는 잡세를 거두는 수금원간에 말다툼이 잦다.그리고 물가고가 천장 모르듯 오르고 인플레가 지속되는 현실을 유머로 잘 소화시키고 있다.

까치배처럼 흰소리 잘하고 행실이 우락부락하고 언사가 오뉴월 사복개천같이 더러운 사람이 한 여관을 찾아 들어왔다.여관방을 뚜리뚜리 살피던 그는

『이게 무슨 여관이야! 돼지굴이지.그래 이 돼지굴 같은 여관의 숙박료는 얼마요?』

하고 희떱게 물었다.무례한 손님 말에 여관집 주인은 예절스럽고 공손하게 답변해주었다.

『돼지 한마리 하룻밤 재우는데 5원입니다』

「까치배처럼 흰소리」는 흰소리를 까치의 배가 흰 데 비유한 말로 북한이나 연변에서는 말이나 행동이 거드럭거리며 건방지고 거만한 사람을 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북한이나 연변에서도 서민들이 보는 일부 기관원이나 당간부들은 희떠운(건방지고 거만한) 존재로 부각되기 일쑤다.이토록 희떠운 존재를 비아냥거리며 유머로 소화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반갑기만 하다.

약방의 한 판매원이 경리에게 회보(보고)하였다.

『새로 온 그 출납원 처녀는 자꾸 졸기만 합니다』

경리는 듣고 나서 대답을 했다.

『별문제 없네.내일부터 그 처녀에게 수면제 약을 파는 매대를 맡기오.약 사러 오는 고객들이 그 처녀가 졸고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우리 약방의 수면제가 아주 효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엄마,엄마,큰일났네요』

『이 애가 왜 이래? 무슨 큰일이 났다고 그러냐?』

『글쎄 큰누나가 밤에는 앞을 보지 못하나봐요』

『그게 무슨 말이냐?』

『장님이 아니면 왜 밤에는 어떤 남자가 그냥 누나 손목을 쥐고 다녀요?』

○경제와 관련 가장많아

시골 지주네집에 삼촌이 놀러왔다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지주는 삼촌의 병치료에 쓸 돈이 아까웠다.삼촌의 병이 점점 심해지자 하는 수 없이 밤에 의사를 데리러 떠났다.그는 절반쯤 가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내 말을 기억하세요.숨이 넘어갈 것이 느껴지거든,필요없이 기름이 타지 않게 꼭 등잔불을 꺼주세요』

한국의 어느 한 거리에서

손님:버스차장! 읍까지 가자면 얼만가요?

차장:1천1백10원입니다.

손님:그럼 짐은 얼만가요?

차장:짐값은 없습니다.

손님:그럼 이 짐을 읍까지 실어다주오.나는 걸어가겠으니.

선생:동문 어째서 다른 동무의 숙제를 해줘요?

학생: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노임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선생:그럼 돈을 받기 위해 숙제를 해준단 말인가?

학생:예,지금은 모두 제2직업을 찾아 돈을 벌고 있지 뭐예요? 그러니 나도… 형세의 발전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비서:국장님,통신대학에서 당신한테로 졸업장을 보내왔습니다.

국장:졸업장? 내가 언제 통신대학에 입학했던가?

비서:2년전에 나더러 입학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교재를 부쳐오면 나더러 건사해두라고 하셨지요.몇차례 시험이 있었는데 내가 시험답안을 만들어 보내지 않았습니까?

국장:그래 그래,생각나오.그런 일이 있었지.잘됐소.당신은 그러느라고지식이 늘어났고,나는 졸업장을 받게 되었으니,우리는 다 같이 소득이 있구먼!

무작위로 게재한 9개의 유머를 살펴볼 때 경제와 관련된 것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관료지탄,일반 우문답(우문답) 순이다.경제분야가 많은 것은 그만치 담화의 중심이 경제이며 일반의 관심사가 경제임을 알 수 있다.지금 연변은 새 경제질서에의 탈바꿈을 하고 있다.<최인학 인하대교수·비교민속학>
1994-11-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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