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회장 목우스님,민족불교지에 기고/신자제외 소장파 승려들이 주도/과격한 행동으로 대중 외면받아/“삶의 현장 자비구현이 사회발전기여의 길”
불교 민중운동이 종교적인 범주를 벗어나 다수 불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수의 유명인물 중심으로 펼쳐져 지나치게 정치적인 색깔을 띠어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같은 비판은 최근까지 민중불교운동을 이끌어온 목우스님(전민중불교운동연합 부회장·정토사)에 의해 제기된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목우스님은 최근 발간된 불교계 무크지 「민족불교」제2호(청년사간)에 기고한 글 「민중불교운동의 반성」을 통해 『민중불교운동이 그동안 극단적인 세력에 이용당한 결과 현재 이 운동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민중불교운동이 급진적인 이념을 탈피,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불타의 자비를 구현할 때 역사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목우스님은 또 『불교운동은 일반운동과는 달리 종교와 운동을 조화하여 일치시키는작업이라야 한다』고 전제하고 『일반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에 집착하여 빠지게 되는 함정이나 오류를 불교운동은 보다 근원적인 시각에서 지적하고 비판하여 그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중불교운동은 80년대 중반 불교사회문화연구원(원장 여익구)을 중심으로 목우,현기스님등 소장승려들과 재가불자들이 연합하여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을 창립하면서 본격화됐다.이어 민불련에 참여한 소장승려 14명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민주헌법쟁취 범국민 개헌서명운동」에 참여하고 1백52명이 그 뒤를 따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승려중심의 「정토구현 전국승가회」가 발족돼 불교운동은 신자중심에서 승려중심으로 옮겨졌다.이들은 곧 해인사에 모여 「불교자주화선언」을 하고 「10·27법난규탄 및 불교자주화쟁취대회」등을 잇따라 열었다.
목우스님은 『민중불교운동은 본래의 근본불교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불교가 역사속에서 어떻게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젊은 승려들에 의해 제기된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이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즉 불교의 상대적연기론에 입각,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올바른 대응을 해야한다는 것이 민중불교운동의 기본취지로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이 왜군에 맞서 싸웠던 것을 일컫는 호국불교와 일맥상통한다는 것.
그러나 그동안의 민중불교운동이 종교적인 범주를 벗어나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된것은 문제라고 진단한 목우스님은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정토구현전국승가회」를 중심으로 한 민중불교운동이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란 두가지 목표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윤석규기자>
불교 민중운동이 종교적인 범주를 벗어나 다수 불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수의 유명인물 중심으로 펼쳐져 지나치게 정치적인 색깔을 띠어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같은 비판은 최근까지 민중불교운동을 이끌어온 목우스님(전민중불교운동연합 부회장·정토사)에 의해 제기된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목우스님은 최근 발간된 불교계 무크지 「민족불교」제2호(청년사간)에 기고한 글 「민중불교운동의 반성」을 통해 『민중불교운동이 그동안 극단적인 세력에 이용당한 결과 현재 이 운동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민중불교운동이 급진적인 이념을 탈피,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불타의 자비를 구현할 때 역사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목우스님은 또 『불교운동은 일반운동과는 달리 종교와 운동을 조화하여 일치시키는작업이라야 한다』고 전제하고 『일반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에 집착하여 빠지게 되는 함정이나 오류를 불교운동은 보다 근원적인 시각에서 지적하고 비판하여 그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중불교운동은 80년대 중반 불교사회문화연구원(원장 여익구)을 중심으로 목우,현기스님등 소장승려들과 재가불자들이 연합하여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을 창립하면서 본격화됐다.이어 민불련에 참여한 소장승려 14명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민주헌법쟁취 범국민 개헌서명운동」에 참여하고 1백52명이 그 뒤를 따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승려중심의 「정토구현 전국승가회」가 발족돼 불교운동은 신자중심에서 승려중심으로 옮겨졌다.이들은 곧 해인사에 모여 「불교자주화선언」을 하고 「10·27법난규탄 및 불교자주화쟁취대회」등을 잇따라 열었다.
목우스님은 『민중불교운동은 본래의 근본불교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불교가 역사속에서 어떻게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젊은 승려들에 의해 제기된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이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즉 불교의 상대적연기론에 입각,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올바른 대응을 해야한다는 것이 민중불교운동의 기본취지로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이 왜군에 맞서 싸웠던 것을 일컫는 호국불교와 일맥상통한다는 것.
그러나 그동안의 민중불교운동이 종교적인 범주를 벗어나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된것은 문제라고 진단한 목우스님은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정토구현전국승가회」를 중심으로 한 민중불교운동이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란 두가지 목표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윤석규기자>
1992-02-0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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