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기둥” KGB 수술대에 오른다

“독재의 기둥” KGB 수술대에 오른다

김재영 기자 기자
입력 1991-08-30 00:00
수정 199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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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위상」 어떻게 바뀌나/개혁물결 반영,권한축소 불가피/휘하 30만 병력 국방부 배속 방침/총원 70만명에 한해 예산 49억 루블 소요

소련 공산독재정권의 「칼과 방패」로 무자비한 철권을 휘둘렀던 「비밀경찰」KGB가 역으로 철퇴를 얻어맞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쿠데타실패 직후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개혁파 인물인 바딤 바카틴 전내무장관을 임명,KGB에 개혁바람을 예고했다.고르바초프는 28일 KGB 최고지휘부인 콜레기움(협의회)의 해체를 명령하고 KGB 휘하의 30만 국경경비대 병력을 국방부 통제하에 두도록 지시했다.

실무국장단과 부의장 7명이 포함된 협의회를 없애 개혁파 바카틴의장이 전적인 지휘권을 갖도록 했으며 본연의 정보활동외에 월권의 근거였던 군사조직을 또한 없애버린 것이다.거기다 진보적인 인사들로 조사단을 구성,KGB 고위층의 지난 쿠데타 개입여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KGB 활동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조사단은 오는 10월 중순까지 이 악명높은 「비밀경찰」의 실상을 적기하면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국가보안위로서의 역할을 제시할 예정이나 KGB의 권위실추와 권한축소는 자명해보인다.

바카틴 신임의장은 『지금까지의 KGB는 거대한 독점 그 자체로서 일대 절단의 수술이 필수적이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다.

KGB는 총 소속인원이 70만명으로 추정되고 공식적인 예산만도 49억루블(한화 약22조원)이다.이 기관의 활동영역을 미국과 대비시켜 보면 CIA의 해외정보활동,FBI의 국내중요범죄 수사,정부기관 동향파악,관세및 국경수비 그리고 일반시민에 대한 사찰권을 포괄 보유해왔다.

군·공산당과 함께 소련독재의 3대 기둥의 하나인 KGB는 지난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창설된 「체카」를 원조로 삼고 있다.혁명정부를 주도하고 있던 레닌은 국내외로부터의 반혁명 음모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기구로 체카를 설치,그해 12월 출범시켰다.「바퀴를 조이는 나사못」이란 뜻의 체카는 처음 2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책임자는 테러 예찬론자로 폴란드태생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였다.

체카는 출범한지 1년이 채안된 1918년 8월 레닌에 대한 저격사건을 계기로 반혁명분자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그후 1919년 말까지 「혁명의 수비대」라는 기치아래 1백만명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재판없이 처형했다.

소련은 신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 차관을 얻기 위해 1922년 2월 체카를 폐지하고 내무인민위원부(NKVD)소속으로 국가정치보안부(GPU)를 설치한다.GPU의 책임자는 제르진스키가 그대로 맡았고 기구도 그대로였으며 23년 소련 헌법이 채택되자 GPU는 합동국가정치보안부로 바뀌지만 실체는 변동없이 똑같았다.

이 기구는 스탈린의 폭압정치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강화된 권한을 부여받고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도맡았다.스탈린 시대의 이 기구 총책인 베리야가 53년 총살당한 뒤 54년 KGB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렀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KGB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나 89년 동구의 민주혁명 때까지만 해도 위성국 정보망의 상부조직으로서 공산독재체제의 유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국내사찰요원 4만명,해외공작요원 2만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요원들은 동구민주화 이후에는 외국의 군사비밀과 경제기술분야 스파이활동에 중점을 두어오면서 서방원조식량의 소련내 배급을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KGB는 90년 5월 합법성을 원칙으로 하고 인권및 자유를 존중한다고 선언했으나 크류치코프 전임 의장은 「서방의 소련전복 기도」를 여러번 경고하는 등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보인 뒤 이번 쿠데타에 주도자로서 참가했다.쿠데타 주도혐의로 기소된 13명 가운데는 크류치코프 의장 외에 3명의 KGB 고위인사가 더 연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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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 일부에서는 이번 쿠데타에의 참여도 및 연루자들은 이 기구 전체로 보아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쿠데타와 상관없이 KGB의 권한축소를 통한 위상재정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주화와 「비밀경찰」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김재영기자>
1991-08-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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