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외교 「고르비이후」 대비할 때다”/민족분규 강경대처로 정치적 위기/후임자들과의 원만한 관계 고려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새연방안이 77.3%라는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새연방안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연방존속이 어려울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음은 소련문제 전문가인 뉴욕 콜게이트대의 마르타브릴 올코트교수가 국제정치 전문 계간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91년 봄호에 기고한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1985년 집권할때만 해도 그는 소연방의 해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소련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침체의 늪에 빠진 경쟁력을 회생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르바초프는 심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일련의 정치·경제개혁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정체된 소련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점진적인 정치·경제의 분권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정치·경제의 분권화에 분명한 한계를 설정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소연방체제의 유지였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자신의 전임자인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소연방의 이익은 각 공화국이나 민족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정책을 계승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체제를 바꾸려는 그의 개혁정책이 심각한 민족문제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점을 예상치 못했다. 정치적 자유를 얻은 많은 소련시민들은 지난 70여년간 소련을 지배해온 공산당 독재체제를 거부했으며 여러지역에서 인종분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인종분규에 경험이 없었던 고르바초프에서 민족문제는 어려운 과제였다. 민족분규는 그의 권위를 손상시켰으며 그의 개혁정책을 어렵게 했다.
고르바초프는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각 공화국의 움직임에 강경책을 사용했다. 그의 강경정책은 지난 90년 12월에 열린 인민대표 대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고르바초프는 인민대표대회에서 소연방체제 유지가 최우선 과제이며 민주화개혁은 그 다음문제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각 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강화된 대통령의 권한을사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는 또 강경파인 보리수 푸고를 내무장관에 기용했다.
모스크바 당국은 91년 1월7일 발트해 3개 공화국들이 특별지위를 가지려는 시도를 더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각 공화국의 외국과의 무역협정은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다.
발트해 3개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을 비롯한 과거 수년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 볼때 소련을 하나의 연방체제로 유지할 경우 설사 느슨한 형태라 하더라도 소련내의 모든 민족을 만족시킬 수 없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대부분의 비러시아인들은 독립과 정치적 자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소연방의 유지를 위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려하지 않는다.
많은 소련인들에게는 이제 경제문제가 더이상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경제회복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그를 자신이 형성한 정치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지도자로 운명지울지도 모른다.
현재의 많은 공화국 지도자들도 고르바초프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지금 모스크바의 불안정한 지도력과 거짓주권 약속에 속았다고 느끼는 시민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독립지향적인 공화국 지도자들은 독립도 번영도 가져오지 못할 경우 그들의 정치적 기반은 위태롭다.
서방지도자들은 소연방의 해체로 인한 정세불안을 두려워하고 있다.
만약 소련의 서쪽 국경선이 바뀐다면 중부유럽의 안정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며 코카서스지역의 분리는 서남아시아의 힘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느 책임있는 정치지도자도 이같은 문제에 직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아마도 이같은 문제는 피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연방의 유지는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들 뿐만 아니라 서방강대국들의 이익에도 큰 도움이 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연방체제 유지는 소련시민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안정된 국가는 국민들의 합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대중의 지배는 합법적 정부의 통치와는 다르다. 서방국가들도 소련인들이 부정할 경우 고르바초프에서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발휘한 장초적인 신사고를 국내에 접목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는 무력으로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 개혁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는 더이상 소련인들의 신임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소련인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은 좋으나 이같은 원조가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장래가 현재의 각 공화국 지도자들과 직접 연계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물러날 경우 후임자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뉴욕 콜게이트대 교수>
소련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새연방안이 77.3%라는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새연방안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연방존속이 어려울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음은 소련문제 전문가인 뉴욕 콜게이트대의 마르타브릴 올코트교수가 국제정치 전문 계간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91년 봄호에 기고한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1985년 집권할때만 해도 그는 소연방의 해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소련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침체의 늪에 빠진 경쟁력을 회생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르바초프는 심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일련의 정치·경제개혁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정체된 소련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점진적인 정치·경제의 분권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정치·경제의 분권화에 분명한 한계를 설정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소연방체제의 유지였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자신의 전임자인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소연방의 이익은 각 공화국이나 민족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정책을 계승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체제를 바꾸려는 그의 개혁정책이 심각한 민족문제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점을 예상치 못했다. 정치적 자유를 얻은 많은 소련시민들은 지난 70여년간 소련을 지배해온 공산당 독재체제를 거부했으며 여러지역에서 인종분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인종분규에 경험이 없었던 고르바초프에서 민족문제는 어려운 과제였다. 민족분규는 그의 권위를 손상시켰으며 그의 개혁정책을 어렵게 했다.
고르바초프는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각 공화국의 움직임에 강경책을 사용했다. 그의 강경정책은 지난 90년 12월에 열린 인민대표 대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고르바초프는 인민대표대회에서 소연방체제 유지가 최우선 과제이며 민주화개혁은 그 다음문제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각 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강화된 대통령의 권한을사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는 또 강경파인 보리수 푸고를 내무장관에 기용했다.
모스크바 당국은 91년 1월7일 발트해 3개 공화국들이 특별지위를 가지려는 시도를 더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각 공화국의 외국과의 무역협정은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다.
발트해 3개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을 비롯한 과거 수년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 볼때 소련을 하나의 연방체제로 유지할 경우 설사 느슨한 형태라 하더라도 소련내의 모든 민족을 만족시킬 수 없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대부분의 비러시아인들은 독립과 정치적 자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소연방의 유지를 위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려하지 않는다.
많은 소련인들에게는 이제 경제문제가 더이상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경제회복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그를 자신이 형성한 정치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지도자로 운명지울지도 모른다.
현재의 많은 공화국 지도자들도 고르바초프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지금 모스크바의 불안정한 지도력과 거짓주권 약속에 속았다고 느끼는 시민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독립지향적인 공화국 지도자들은 독립도 번영도 가져오지 못할 경우 그들의 정치적 기반은 위태롭다.
서방지도자들은 소연방의 해체로 인한 정세불안을 두려워하고 있다.
만약 소련의 서쪽 국경선이 바뀐다면 중부유럽의 안정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며 코카서스지역의 분리는 서남아시아의 힘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느 책임있는 정치지도자도 이같은 문제에 직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아마도 이같은 문제는 피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연방의 유지는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들 뿐만 아니라 서방강대국들의 이익에도 큰 도움이 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연방체제 유지는 소련시민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안정된 국가는 국민들의 합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대중의 지배는 합법적 정부의 통치와는 다르다. 서방국가들도 소련인들이 부정할 경우 고르바초프에서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발휘한 장초적인 신사고를 국내에 접목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는 무력으로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화 개혁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는 더이상 소련인들의 신임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소련인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은 좋으나 이같은 원조가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장래가 현재의 각 공화국 지도자들과 직접 연계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물러날 경우 후임자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뉴욕 콜게이트대 교수>
1991-03-2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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