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정국면을 잘 살리자(사설)

이 진정국면을 잘 살리자(사설)

입력 1990-05-12 00:00
수정 199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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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동안 사회를 경색시켜온 KBS사태가 해결국면으로 진전되고 있다. 각부서의 간부급 사원들이 제작복귀를 결심했고 오늘부터는 보도본부소속의 기자 1백50명이 제작에 복귀하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상당수 사원들의 뜻이 이렇게 선방송정상화 움직임으로 옮겨가자 강경하던 파업주체인 비대위측에서도 18일에 일단 「정상화」로 복귀할 것을 결정했다. 한치 앞을 짐작하기 어려운 혼미속에서 파국으로 치닫던 공영방송이 이만큼에서라도 제자리를 찾아 수습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잖아도 「반민자가투」로 폭력시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터에 KBS사태라도 진정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은 일말의 안도감이 들게 한다.

KBS와 함께 시한폭탄처럼 위기감을 조성하던 현중의 「골리앗 농성」도 10일로 일단 풀렸다. 우리의 봄정국을 심각하게 사로잡았던 두가지의 난제가 이렇게라도 풀릴수 있게 된 것을 진정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모처럼 조성된 이 진정국면을 이제부터 잘 살려나가지 않으면 안된다.우선은 강경구조의 집단시위는 모면하게 되었지만 어느 쪽이건 근원적인 해결을 본 것은 아니다. 명분으로 보나 합법성으로 보나 승산이 약한 집단행동이었으므로 진로정비를 하여 재도전하려는 의지로도 볼 수 있고,응어리가 다시금 팽창해서 새로운 긴장국면을 부르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일들이 대단히 중요하다. 더구나 작금의 연이은 체제부정세력의 극렬한 폭력시위는 온 거리를 화염병으로 그을리고 있다. 거기 맞서는 공권력의 최루탄 가스는 세상을 초연으로 뒤덮을 기세다. 가뜩이나 체증심한 도심의 교통이 데모공방에 의해 불시에 마비가 되기도 한다.

미국문화원이 방화세례를 받았고,서류들이 훈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판국에서 두개의 커다란 난제가 풀린 것은 그나마 여간 잘된 일이 아니다. 속에 남아있는 불씨의 잔재가 디시 불길에 댕기지 않도록 서로 빌미를 주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습국면에 들어선 시위현장과 그 구성원들이 이제부터 겪어야 할 갈등 또한 만만치가 않다. 서로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적대와반목의 경험만을 쌓은채 미봉적으로 끝난 사태가,명실공히 정상화에 이르자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상하,좌우가 온통 갈등의 관계로 찢겨버렸고,단절되고 파괴된 목전의 현실들이 폐허처럼 일할 의욕을 좌절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걸 뛰어 넘지 않으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여기서 한걸음만 또다시 비틀거린다면 그때는 종언의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의 KBS를 국민들은 더는 관용하지 않을 것이다. 근로자들에 대한 국민여론도 가혹해지고 질책 또한 과격해질 것이다. 그걸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함께 삶의 뿌리를 두고 있는 이땅이,지난 몇 십년의 공을 무너뜨린채 황폐하고 실패한 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파행의 뒤끝에 생긴 갈등의 깊은 골을 메우고 상처를 회생시키는 일에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된다. 제발,이 기회를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우리의 공동의 상처가 회복되는 기회가 되게 하기를 간절히 당부한다.
1990-05-1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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