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에 부쳐
오늘로써 서른번째 「신문의 날」을 맞는다. 해마다 신문단체들은 「신문의 날」을 맞아 그때마다 우리 신문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나 또는 목표를 함축하는 내용의 표어를 선정해 왔다. 올해는 「책임있는 신문,신뢰받는 신문」을 표어로 정했다. 말하자면 이 표어에는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신문인들의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자성과 다짐의 표현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언론의 자유와 함께 항상 강조되는 규범이다. 그 까닭은 자유의 개념속에는 책임이라는 관념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철학적 관점 때문만이 아니라 신문이 사회의 공기로서 공적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비롯되는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크게 나누어 볼 때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첫번째 의미는 신문이 언론의 자유를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이 권력기관화되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혹은 개인이나 법인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사회적 요구가 이에 속한다고 보겠다.
두번째 뜻은 언론의 자유를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즉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론의 사회적 구실과 연관된 과제이다. 신문은 전통적으로 환경의 감시자일 뿐만 아니라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제시해 주며 문화를 전승시키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므로 신문은 그와같은 구실을 충실하게 담당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요청은 신문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의 적극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때 신문이 소극적및 적극적 의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독자로부터 신뢰를 받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단체들이 올해의 표어로 새삼스럽게 「책임있는 신문,신뢰받는 신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표어는 적어도 두가지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나는 현재의 우리 신문이 제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으며 그 결과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이고,나머지 하나는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다짐이라 생각된다. 이와함께 우리는 신문의 책임이 어떤상황 속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돌이켜 볼 때 신문의 책임은 언론자유가 극도로 억압당했던 상황에서 언론의 자유가 크게 확대되는 전환기에 항상 역설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바로 그러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올해 신문 주간의 표어가 지니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이 되기 위해 몇가지 유의할 바를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환기상황 직시를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신문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의 소극적 측면과 관련하여 사이비언론을 척결하는 과제이다. 특히 이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언론자유의 오용과 남용의 전형적 병폐인 사이비언론의 발호가 언론계의 자율적인 정화노력에 의해 척결되지 못하는 경우 타율적인 힘의 개입이 불가피해지고,그에따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는 가능성 때문인 것이다. 이미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5ㆍ16이후 언론에 대한 억압이 그 당시의 사이비언론에서 말미암았었다는 역사적 체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기성 신문계의 금품수수도 자정운동을 통해 없어져야 하겠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문이 보다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히 봉사해달라는 요청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날의 경우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통제가 극심했으므로 신문이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현실은 어느정도 독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책임이 언론 그 자체에 귀결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인식을 해야만 한다. 특히 민주정치의 과정에 있어 여론이 정책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신문은 중요한 공공의 관심사를 제때에 알려주어야만 옳다. 그럼에도 요즘의 신문은 그와같은 본래적 기능,즉 여론형성자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경우 어느 신문치고 그 법안이 국회 문공위에 상정되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는지를 보도해 준 일이 없다. 신문들은 그 법안이 통과된 뒤 교육계에서 문제를 삼자 비로소 보도와 논평을 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교육계의 중요한 관심사를 보도하고 논평함으로써 토론의 의제를 설정하여 여론을 형성시켜야 할 신문이 뒤늦게 여론에 밀려 그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결과가 된 셈이다.
이러한 사례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오늘의 신문이 제 할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또한 우리 언론이 보이고 있는 일관성의 부재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들어 경제각료팀이 교차될 때마다 드러나는 태도로 물러간 경제팀의 정책을 비판하던 신문들이 새로운 경제각료팀이 내세우는 지난 팀과는 반대되는 경제시책을 역시 비판하는 자세를 보이는 현상이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경제시책에서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신문 자신이 자기의 관점을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론형성 기능 미흡
우리 신문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지 못한 데서 초래되는 결과는 여러면에서 우리 언론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다. 기사의 깊이가 부족한 원인이 되기도 하며 여론을 오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치와 규범이 극심한 혼란을 겪는 시대상황일수록 언론은 일관성 있게 관점을 제시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신문에 대해 요구하는 책임일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신문은 독자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본사 논평위원>
오늘로써 서른번째 「신문의 날」을 맞는다. 해마다 신문단체들은 「신문의 날」을 맞아 그때마다 우리 신문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나 또는 목표를 함축하는 내용의 표어를 선정해 왔다. 올해는 「책임있는 신문,신뢰받는 신문」을 표어로 정했다. 말하자면 이 표어에는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신문인들의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자성과 다짐의 표현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언론의 자유와 함께 항상 강조되는 규범이다. 그 까닭은 자유의 개념속에는 책임이라는 관념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철학적 관점 때문만이 아니라 신문이 사회의 공기로서 공적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비롯되는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크게 나누어 볼 때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첫번째 의미는 신문이 언론의 자유를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이 권력기관화되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혹은 개인이나 법인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사회적 요구가 이에 속한다고 보겠다.
두번째 뜻은 언론의 자유를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즉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론의 사회적 구실과 연관된 과제이다. 신문은 전통적으로 환경의 감시자일 뿐만 아니라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제시해 주며 문화를 전승시키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므로 신문은 그와같은 구실을 충실하게 담당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요청은 신문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의 적극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때 신문이 소극적및 적극적 의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독자로부터 신뢰를 받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단체들이 올해의 표어로 새삼스럽게 「책임있는 신문,신뢰받는 신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표어는 적어도 두가지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나는 현재의 우리 신문이 제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으며 그 결과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이고,나머지 하나는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다짐이라 생각된다. 이와함께 우리는 신문의 책임이 어떤상황 속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돌이켜 볼 때 신문의 책임은 언론자유가 극도로 억압당했던 상황에서 언론의 자유가 크게 확대되는 전환기에 항상 역설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바로 그러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올해 신문 주간의 표어가 지니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책임있고 신뢰받는 신문이 되기 위해 몇가지 유의할 바를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환기상황 직시를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신문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의 소극적 측면과 관련하여 사이비언론을 척결하는 과제이다. 특히 이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언론자유의 오용과 남용의 전형적 병폐인 사이비언론의 발호가 언론계의 자율적인 정화노력에 의해 척결되지 못하는 경우 타율적인 힘의 개입이 불가피해지고,그에따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는 가능성 때문인 것이다. 이미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5ㆍ16이후 언론에 대한 억압이 그 당시의 사이비언론에서 말미암았었다는 역사적 체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기성 신문계의 금품수수도 자정운동을 통해 없어져야 하겠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문이 보다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히 봉사해달라는 요청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날의 경우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통제가 극심했으므로 신문이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현실은 어느정도 독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책임이 언론 그 자체에 귀결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인식을 해야만 한다. 특히 민주정치의 과정에 있어 여론이 정책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신문은 중요한 공공의 관심사를 제때에 알려주어야만 옳다. 그럼에도 요즘의 신문은 그와같은 본래적 기능,즉 여론형성자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경우 어느 신문치고 그 법안이 국회 문공위에 상정되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는지를 보도해 준 일이 없다. 신문들은 그 법안이 통과된 뒤 교육계에서 문제를 삼자 비로소 보도와 논평을 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교육계의 중요한 관심사를 보도하고 논평함으로써 토론의 의제를 설정하여 여론을 형성시켜야 할 신문이 뒤늦게 여론에 밀려 그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결과가 된 셈이다.
이러한 사례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오늘의 신문이 제 할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또한 우리 언론이 보이고 있는 일관성의 부재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들어 경제각료팀이 교차될 때마다 드러나는 태도로 물러간 경제팀의 정책을 비판하던 신문들이 새로운 경제각료팀이 내세우는 지난 팀과는 반대되는 경제시책을 역시 비판하는 자세를 보이는 현상이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경제시책에서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신문 자신이 자기의 관점을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론형성 기능 미흡
우리 신문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지 못한 데서 초래되는 결과는 여러면에서 우리 언론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다. 기사의 깊이가 부족한 원인이 되기도 하며 여론을 오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치와 규범이 극심한 혼란을 겪는 시대상황일수록 언론은 일관성 있게 관점을 제시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신문에 대해 요구하는 책임일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신문은 독자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본사 논평위원>
1990-04-07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