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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인정한 순간, 바둑 인생 ‘신의 한 수’

패배를 인정한 순간, 바둑 인생 ‘신의 한 수’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1-11-19 01:24
업데이트 2021-11-19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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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배 우승으로 부활 선언한 박정환

“처음 2위가 됐을 땐 납득이 안돼 힘들었는데 요즘은 인정하니까 편해졌어요.”

한때 세계 바둑계를 호령하던 박정환(28) 9단은 지난해 바둑기사로서 큰 절망을 경험했다. 후배이자 라이벌인 신진서(21) 9단과의 남해 7번기에서 7전 7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신 9단과 2위 박 9단의 맞대결인 만큼 많은 이가 4승 3패 내지는 5승 2패 정도의 승부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지난 16일 전화로 만난 박 9단은 “4패가 되고 나서 계속 대결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면서도 “그래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바둑은 없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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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9단이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근처 한 카페에서 삼성화재배 우승 기념 인터뷰를 하는 도중 활짝 웃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박정환 9단이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근처 한 카페에서 삼성화재배 우승 기념 인터뷰를 하는 도중 활짝 웃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바닥 찍었던 ‘그날의 7전 7패’

2019년 춘란배를 우승하고 지난해 1월 하세배 3연패를 달성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바닥까지 내려간 박 9단의 내상을 걱정하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박 9단은 “그래도 예전부터 큰 승부를 많이 해서 패배해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생겼던 것 같다”면서 “솔직히 시간이 제일 좋은 약이었다”고 웃었다. 남해 7번기를 계기로 신 9단에게 패권이 완전히 넘어갔지만 박 9단은 이 대결을 “미세한 실수를 하면 응징당한다는 걸 배울 수 있던 바둑”이자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승부”라고 평가했다.

●“최선의 수 두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시간의 힘으로 천천히 다시 일어선 박 9단은 지난 3일 대형 사고를 쳤다. 삼성화재배에서 신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한국 기사의 삼성화재배 우승은 7년 만이었다.

박 9단은 “누가 이겨도 한국 우승이니까 좋기도 했지만 가장 까다로운 상대라서 기분이 묘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신 9단이 이번 결승 전까지 세계대회에서 16연승 중이었던 만큼 박 9단에겐 부담이 컸다.

1국을 지고 “허무하게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박 9단은 2국을 잡고 한숨을 돌렸다. ‘최선의 수를 두지 않는다면, 승부를 걸지 않는다면 신진서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마지막 3국에서 대마 사활로 승부수를 띄웠고, 이것이 그에게 우승컵을 안기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메이저 10회 우승이 목표… 지금 딱 절반

이번 우승으로 박 9단은 바둑기사로서 목표했던 메이저 세계대회 10회 우승의 딱 절반을 채웠다. 박 9단은 “40살까지 성적을 내는 게 목표였는데 내년에 한국 나이로 30이다. 바둑 인생도 절반 왔다”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전성기가 꺾이는 나이로 평가받는 시기지만 박 9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요즘은 인공지능(AI)으로 배우는 시대니까 체력 관리만 잘한다면 나이가 많아도 성적을 못 낼 이유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최근 그의 기량이 다시 올라온 이유도 AI가 두는 효율적인 수를 적극적으로 배운 덕분이다.

삼성화재배를 우승하고 곧바로 열린 LG배에선 8강에서 떨어졌지만 박 9단은 좌절하는 대신 오는 26일 열리는 농심배를 생각했다. 지난해 8월 농심배에서 커제(24) 9단과의 마지막 대국에서 패했던 그는 “이번엔 꼭 다 이기고 우승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021-11-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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