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통일축구’ 감동 평양서 다시한번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통일축구’ 감동 평양서 다시한번

입력 2008-02-28 00:00
수정 2008-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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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을 가졌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역사적인 공연’이었다. 대단히 미국적인 ‘신세계 교향곡’은 물론 성조기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까지 연주되었으니, 얼음장 밑으로 강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개성에서 돌아오는 대한축구협회의 실무대표단은 안타깝게도 빈 손이었다.2010년 남아공월드컵 예선과 관련, 북한 관계자와 협상을 벌였지만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 거부’라는 북한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북한을 이해하려는 관점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도 있다.

그들은 나름의 국가 체제를 형성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태극기와 애국가를 허용한 적이 없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북한은 ‘적성국가’인 미국은 불가피하게 인정하지만 남한은 ‘미수복’된 영역으로 여긴다. 북한 주민들에게 태극기가 펄럭이는 광경을 제공하고 싶지 않은 내부적 요인에다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도 현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한반도기와 아리랑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우선 이 경기는 남북 양측의 친선 경기가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다.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해온 FIFA의 성향으로 볼 때, 북한의 요구는 관철되기 힘들다.

국제 정세의 측면에서도 북한은 좀 더 전향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6자 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이미 남한의 ‘실체’는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이 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유명한 ‘광폭 정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국제 경기의 최소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경기를 진행할 경우 북한 내부의 이견들을 큰 틀에서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국기에 충성을 맹세하는 흑인 병사의 사진을 분석하면서 말했듯이, 우연적이거나 일회적인 상징이 견고한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다. 지금 북한은 그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사례가 견고한 전례들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해 축구협회는 취재진이나 응원단의 규모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순조롭게 경기를 마친 뒤 남북의 젊은 선수들이 북한 주민들의 박수 속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건 북측의 ‘정치적’ 관점에서도 결코 유해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경기 종료 후 북한의 리경인과 남한의 최태욱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그런데 두 선수는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축구화까지 벗어서 바꿔 신었다. 우리는 그러한 광경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2008-02-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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