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괴롭힘 자료사진. 연합뉴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 2)이 도입된 지 6년이 됐지만, 가해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피해는 증가했고, 괴롭힘 수준은 악화했다. 피해 신고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으나, 실제 위법 인정 비율은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그 사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해나 죽음을 고민한 사람만 늘었다.
있으나 마나, 유명무실한 관련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직장인 3명 중 1명 괴롭힘 경험했지만
“참거나 모르는 척…회사 그만두기도”
‘무대응’에도 피해신고 건수는 역대 최다
법 위반 ‘괴롭힘 인정’ 비율은 12% 불과


직장 내 괴롭힘 자료사진. 서울신문 DB
‘직장갑질119’가 작년 12월 2~11일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 있다는 직장인은 35.9%로, 작년 1분기(30.5%)보다 5.4% 포인트 증가했다. 유형별로는 ▲모욕·명예훼손이 23.5%로 가장 많았고 ▲부당 지시가 19.6%, ▲폭행·폭언이 19.1%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고도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응답이 51.3%로 절반 이상이었다. 아예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도 23.7%에 달했다. 반면 ▲회사 또는 노동조합,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7.8%에 그쳤다.
그럼에도 작년 한 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1만 2253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참거나 모르는 척한 피해자가 절반 이상인데도, 피해 신고는 2020년 5823건에서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개선 지도, 과태료 부과 등 법 위반으로 판정된 비율은 약 8건 중 1건(12.4%)에 불과했다.
관련법에 따른 신고나, 대응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사이 가해 수준은 악화했다.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작년 1분기 46.6%에서 54.0%로 증가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해나 죽음을 고민한 적 있다는 응답이 같은 기간 15.7%에서 22.8%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자살 충동이 ‘우울증 유무’와 상관없이 유의미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와 관계 없이, 직장 내 괴롭힘 자체만으로도 자살 위험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괴롭힘 수준 악화…“자해나 죽음 고민” 증가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자살위험 최대 4배 높여”
‘신고 애매’ 미세 괴롭힘도 자살 충동 부추긴다
관련법 유명무실…“기업·국가 차원 예방 필요”


직장 내 괴롭힘 자료사진. 연합뉴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조성준·김은수 교수 연구팀은 2020∼2022년 이 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 검진받은 19∼65세 직장인 1만 2541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과 자살 생각 및 시도에 미치는 연관성을 분석했다. 모든 직종을 대상으로 한 자살 경향성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의 자살 시도 위험은 최대 4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응답자들을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없음 ▲빈번한 괴롭힘 경험(주 1회 이상 혹은 매일) 그룹 등으로 분류해 평가해보니, 빈번한 괴롭힘을 경험한 그룹은 괴롭힘 경험이 없는 그룹보다 자살 생각이 1.8배, 자살 시도가 4.43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끔 괴롭힘 경험(월 1회 이하) 그룹의 자살 생각도 괴롭힘 경험이 없는 그룹보다 1.47배, 자살 시도는 2.27배 높았다는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 가운데 가장 흔한 유형인 ‘모욕·명예훼손’의 경우 그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실제적,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도 적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신고는커녕, 참거나 모르는 척하는 이유다. 작가 남대희는 ‘미세공격주의보’에서 이런 은근하고 미묘한 괴롭힘을 ‘미세공격’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 1회 이하의 비정기적·비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도 피해자의 자살 충동 및 시도를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관련기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대처가 요구된다.
전상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없는 근로자에게도 자살 경향성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자살 경향성이 개인 정신건강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을 뜻한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할 수 있는 기업 및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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