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생일이라며 오랜만에 전화 와서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는데….”
30일 서울 방화대교 남단 인근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도로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로 숨진 중국 국적 근로자 최창희(52)씨는 전날인 29일 생일을 맞았다.
평생 자신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던 최씨가 유독 올해는 생일 전날인 일요일에 친지와 모여 즐겁게 생일을 보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그러나 그 것이 최씨의 생전 마지막 생일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이날 최씨의 시신이 옮겨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모인 유족은 오열했다. 최씨의 손윗동서인 이옥윤(58)씨는 “한국에서 돈 벌어 잘 살아보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는 8년 전 돈을 벌려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와 줄곧 공사 현장에서 일해왔다. 한국에서 아내, 딸과 생활했고, 아들은 중국에 혼자 남아 학교에 다녔다.
아들은 중국에서 경찰이 되기 위한 연수를 받고 있고, 딸은 서울에서 학원 등을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에 있는 두 자녀의 뒷바라지도 모두 최씨 몫이었다.
이씨는 “(손아래) 동서는 일하다 소소하게 다친 적은 있어도 건강한 편이었고 가족도 화목했다”라며 “아이들 시집·장가 가는 것도 못 보고 가버리다니…”라며 울먹였다.
최씨의 동료이자 콘크리트 타설기 주인인 박모(52)씨는 “상판 무게중심이 뒤집히면서 장비가 떨어져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이날 공사 현장에는 없었지만, 지난주 금요일 현장을 지켜봤다.
이날 변을 당한 일용직 근로자들은 콘크리트 등의 작업을 위해 지난주 금요일 공사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오늘까지 방화대교에서 일하고 부산∼냉정 고속도로 현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최씨와 6∼7년을 가족처럼 함께 일했다는 박씨는 최씨에 대해 “힘든 내색 한번 안하고 굉장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주변 사람도 잘 챙겼다”라며 “월급 받아 전부 고스란히 처자식들 먹여 살리는 데에만 썼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사고로 숨진 허동길(50)씨의 가족도 갑작스러운 비보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허씨 시신이 안치된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달려온 가족과 친지들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 손에서 어렵게 자랐는데, 이렇게 가다니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허씨의 여동생 경자씨는 “어제 오빠가 오랜만에 찾아와 밥도 사주고 집에서 자고 갔는데, 하루 만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오열했다.
가족들은 6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허씨가 공사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비를 아껴 딸을 위해 살뜰히 돈을 모았다고 전했다.
허씨의 둘째 형인 동호씨는 “예뻐하는 외동딸 잘 키워서 시집 잘 보내는 게 소원인 착한 사람이었는데…어쩌다 이렇게 됐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후 9시30분께 허씨 시신은 최씨가 있는 이대 목동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방화대교 남단 인근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도로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로 숨진 중국 국적 근로자 최창희(52)씨는 전날인 29일 생일을 맞았다.
평생 자신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던 최씨가 유독 올해는 생일 전날인 일요일에 친지와 모여 즐겁게 생일을 보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그러나 그 것이 최씨의 생전 마지막 생일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이날 최씨의 시신이 옮겨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모인 유족은 오열했다. 최씨의 손윗동서인 이옥윤(58)씨는 “한국에서 돈 벌어 잘 살아보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는 8년 전 돈을 벌려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와 줄곧 공사 현장에서 일해왔다. 한국에서 아내, 딸과 생활했고, 아들은 중국에 혼자 남아 학교에 다녔다.
아들은 중국에서 경찰이 되기 위한 연수를 받고 있고, 딸은 서울에서 학원 등을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에 있는 두 자녀의 뒷바라지도 모두 최씨 몫이었다.
이씨는 “(손아래) 동서는 일하다 소소하게 다친 적은 있어도 건강한 편이었고 가족도 화목했다”라며 “아이들 시집·장가 가는 것도 못 보고 가버리다니…”라며 울먹였다.
최씨의 동료이자 콘크리트 타설기 주인인 박모(52)씨는 “상판 무게중심이 뒤집히면서 장비가 떨어져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이날 공사 현장에는 없었지만, 지난주 금요일 현장을 지켜봤다.
이날 변을 당한 일용직 근로자들은 콘크리트 등의 작업을 위해 지난주 금요일 공사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오늘까지 방화대교에서 일하고 부산∼냉정 고속도로 현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최씨와 6∼7년을 가족처럼 함께 일했다는 박씨는 최씨에 대해 “힘든 내색 한번 안하고 굉장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주변 사람도 잘 챙겼다”라며 “월급 받아 전부 고스란히 처자식들 먹여 살리는 데에만 썼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사고로 숨진 허동길(50)씨의 가족도 갑작스러운 비보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허씨 시신이 안치된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달려온 가족과 친지들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 손에서 어렵게 자랐는데, 이렇게 가다니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허씨의 여동생 경자씨는 “어제 오빠가 오랜만에 찾아와 밥도 사주고 집에서 자고 갔는데, 하루 만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오열했다.
가족들은 6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허씨가 공사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비를 아껴 딸을 위해 살뜰히 돈을 모았다고 전했다.
허씨의 둘째 형인 동호씨는 “예뻐하는 외동딸 잘 키워서 시집 잘 보내는 게 소원인 착한 사람이었는데…어쩌다 이렇게 됐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후 9시30분께 허씨 시신은 최씨가 있는 이대 목동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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