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에 국가유공자 인정받은 대북첩보 ‘켈로부대원’ 임덕준씨
“생전에 한을 풀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북한인민군에서 국군포로로, 다시 해병대를 거쳐 북파공작원으로 굴곡의 인생을 걸어온 임덕준(81)씨는 국가유공자 지정 소식을 전해듣고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한국전쟁 때 지뢰 파편이 오른쪽 얼굴을 관통, 광대뼈가 부서진 탓에 제대로 웃을 수도 없었던 55년의 세월이었지만 이날만은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임덕준씨
그는 전쟁 당시 ‘무명용사’로 ‘켈로(KLO)부대’ 대원이었다. 켈로부대는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첩보활동을 위해 설치한 ‘주한연락처’란 의미로 대북 첩보부대다.
켈로부대원들은 정식 군번을 부여받은 정규군이 아니어서 무명용사로 남아 있다.1995년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유공자로 인정받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관련 기록이 거의 없어 부대원 상당수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황해도 송화 출신인 임씨는 1950년 해병대 모병 7기로 입대했으나 북한 인민군 포로 출신이라는 이유으로 북파공작원에 징집됐다. 그후 북한으로 침투해 황해도의 북한군 주둔지 1개 사단과 인민군 기마대 3대대, 내무소(파출소)를 폭파시키는 임무를 해냈다. 하지만 53년 북한 주둔지에서 정보를 수집해 나오다 지뢰 파편을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인근 해역에 정박중인 유엔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하고 제대했지만 심각한 침투공작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 떠올라 매일 약 46개 먹어야
임씨는 “매일 46개의 신경정신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인민군에게 쫓기는 악몽이 자꾸 떠올라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7년이 지난 1961년, 마침내 군번을 받은 그는 이후 ‘30년간 부대활동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강제 서약을 지켜왔다. 그러다 1999년 국가보훈처에 두 차례에 걸쳐 국가유공자 신청을 냈다. 하지만 보훈처에서 당시 군번과 병상일지 등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임씨로부터 민원을 받은 후 6개월 동안 임씨를 치료한 간호사와 후송 소대원을 잇달아 만나 증언을 확보하고, 보훈처에 ‘유공자 재심의’를 요청했다. 이에 보훈처는 최근 임씨가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게 됐다고 20일 밝혔다.
“부상 후유증에다 아내가 파킨슨병에 걸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가에 목숨을 바쳐 헌신한 공로를 뒤늦게나마 인정받게 돼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2008-02-2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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