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운동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운동회

유지혜 기자
입력 2006-03-29 00:00
수정 2006-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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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배구경기가 한창인데 관중들은 응원은커녕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그저 방울소리 나는 배구공만 주시할 뿐이다. 선수들은 네트 위로 스파이크를 날리는 게 아니라 바닥으로 공을 굴린다.

“삑∼아웃!”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에 한쪽 응원석에서는 “야호∼” 환호성이 오르고 반대쪽에서는 “구야시이(아깝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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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스매싱
희망 스매싱 2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맹학교에서 열린 한·일 친선 시각장애인 체육대회에서 한 일본 학생이 소리와 느낌만으로 공의 위치를 파악하며 탁구경기를 하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국립서울맹학교 강당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체육대회’가 열렸다. 아마 역사상 가장 조용한 한·일전이기도 할 것이다. 이날 체육대회는 서울과 일본 센다이 국제로터리 클럽이 공동주최한 ‘한·일 친선 시각장애인 체육·문화 교류행사’ 중 하나로 열렸다. 일본에서는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시각장애인 10명이 참가했다.

대회 종목은 배구와 탁구, 골볼 등 3가지. 배구는 코트에 네트를 낮게 치고 그 밑으로 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공은 안에다 방울을 넣어 움직일 때마다 소리났다. 선수들이 소리를 통해 공이 오는 방향과 속도 등을 알 수 있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두 ‘침묵의 응원’을 해야 한다. 관중들은 휴대전화까지 진동으로 바꿔놓고 시합에 집중했다.

공이 바닥에서 왔다갔다 하는 게 고작이지만 주먹으로 강스파이크를 날리기도 하고 서브를 하기도 한다. 선수 6명 중 완전히 앞을 볼 수 없는 학생 3명이 네트 바로 앞에 앉아 공격을 하고 앞이 희미하게 보이는 학생들은 뒤에서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잡는다. 학생들은 손으로 더듬어서 라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온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수비를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전국 단위의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는 서울맹학교 학생들은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라고 봐주지 않았다.15점 1세트로 진행된 경기는 15대 10으로 한국팀 승리, 하지만 양팀 모두 얼굴에는 뿌듯한 웃음이 퍼졌다.

경기에 참여한 이와테현립맹학교 기카와 노조미(19·여·보건의료과 2년)는 “한국에 오기 전 클럽에서 연습을 많이 했는데, 서울맹학교 선수들은 굉장한 강적이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한국에 오니 세계가 넓어진 느낌이라 즐겁다.”고 좋아했다. 서울맹학교 이연경(17·고1)양도 “생각했던 것보다 일본 친구들이 굉장히 다정다감하다. 남은 시간도 함께 어울려 재밌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3박4일 일정으로 27일 한국에 온 일본 학생들은 문화 교류와 서울 근교 관광 등을 하고 30일 출국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일본 센다이의 국제로터리클럽 2520지구가 친교 10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의 국제로터리 3640지구에 제의해 이뤄졌다.

3640지구 방흥복 사무총장은 “내년에도 교류를 갖는 등 정례화할 계획”이라면서 “이번 행사를 영상물로 제작해 미국에 있는 본부에 보내는 등 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알려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2006-03-2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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