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아리랑’을 177페이지의 희곡으로 압축하느라 애쓴 게 느껴진다.피에르 앙드레 테르지앙은 프랑스인이면서도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인지 ‘분노의 세월’은 한국인의 분노·서러움을 잘 표출했다.”
소설가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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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
소설 ‘아리랑’의 프랑스어 희곡집 ‘분노의 세월’의 출간을 위해 프랑스에 다녀온 작가 조정래(61)씨가 5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분노의 세월’ 한국어판 번역 출간 기념도 겸한 이 자리에서 작가는 “지난달 19일 프랑스 프라안제리코 극단의 배우 8명이 희곡집 한 대목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는데 평면적이지 않고 연극과 비슷한 분위기여서 느낌이 좋았다.”며 “주 프랑스 한국대사 등 참석 인사들이 무대에 올리자고 해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너무 축약하다 보니 소설만의 구체적 실감이나 묘사가 전달이 덜 돼 공연 전에 수정할 것”이라고 원작자다운 비판도 곁들였다.
이를테면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학살할 때 심장부위에 흰 표적을 붙여서 마치 사격연습하듯 만행을 저지른 대목,송수익과 필녀 등 등장인물이 손도 잡지 못하고 나누는 절제된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키스했다’로 묘사한 장면은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조씨의 희곡집은 지난해 ‘아리랑’의 프랑스판을 낸 아르마탕 출판사에서 7개월 동안 교열을 본 극작가 겸 시인 테르지앙이 ‘아리랑’은 내게 폭탄”이라고 원작자에게 말할 정도로 감동을 받고 지난해 5,6월 쓴 작품.‘아리랑’에 담긴 내용을 3일 동안의 사건으로 응축시킨 그는 책의 해제(解題)에서 “무려 300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몇몇 극중인물로 간추리고,숱한 사건들로 수놓아진 이야기를 한정된 무대 위에 추려 내놓는 일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피눈물나는 역사를 복원하고 긍지의 함성을 이끌어내는 기회로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조씨는 자신의 작품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테르지앙이 ‘일본의 포악함에 대해서 ‘아리랑’을 읽고 처음 알았다.우리(프랑스)도 식민지를 지배했지만 이처럼 잔혹하지 않았는데 이를 알리지 못한 것은 한국의 책임’이라고 말할 때는 창피했다.”며 “‘아리랑’을 번역했던 지겔 메이어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은 겹경사를 안겨주었다.‘아리랑’의 반응이 좋자,출판사 두 곳에서 다른 작품을 번역하자고 제의했다.조씨는 “낭독회 때 러시아와 독일측 인사들이 참여해 ‘아리랑’ 번역의 뜻을 밝혔다.”며 “스페인어와 영어로도 곧 번역될 예정”이라고 말했다.또 미국에서 유리비스 오페라단을 운영하는 재미교포 최상균 단장이 프랑스에서 공연 도중 조씨를 찾아와 “‘아리랑’을 꼭 오페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2004-07-0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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