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 고비마다 발목 잡는 美 국내정치… 연말까지 주요 변수로

북미협상 고비마다 발목 잡는 美 국내정치… 연말까지 주요 변수로

박기석 기자
입력 2019-10-08 01:32
수정 2019-10-0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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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길 “美 준비 안 되면 끔찍한 사변”

시간 끌면 ICBM 시험 발사 재개 경고
北, 대선 얽힌 美정치 이례적 공식 지적
2월 하노이 노딜도 코언 청문회 영향

전문가 “트럼프 재선용 활용… 北 초조”
“한국이 적극적 돌파구 찾아야” 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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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7일 귀국길의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김 대사는 “추후 회담은 미국 측에 달려 있다”고 했다. 베이징 연합뉴스
스웨덴 스톡홀름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7일 귀국길의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김 대사는 “추후 회담은 미국 측에 달려 있다”고 했다.
베이징 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미국의 국내 정치가 또다시 주요 변수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6일 담화를 통해 “미국은 이번 협상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으며 저들의 국내 정치 일정에 조미 대화를 도용해 보려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 하였다”고 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의 국내 정치 문제로 비핵화 협상이 차질을 빚는다고 북한이 공식적으로 대놓고 지적하고 나선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 입장에선 미국의 저의를 불신하고 있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국내 정치 일정은 내년 11월 대통령선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입장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의 현상 유지’가 선거에서 가장 유리하다고 보고 선거가 끝날 때까지 시간 끌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재 해제 등 북한과 전향적인 합의를 했다가 미국 내에서 역풍을 맞는 것도 불리하고, 반대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재현되면 외교 실패 책임론에 직면할 우려가 있어 협상을 질질 끄는 전략을 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이 거듭해서 협상 시한을 ‘연말’로 못박는 것은 이런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휘둘리지 않겠다는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스톡홀름에서 북미 협상을 마치고 귀환길에 오른 북측 수석대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7일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 두고 보자”며 ICBM 시험 발사 재개 가능성을 경고한 것도 시간 끌기가 통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에 경고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이처럼 미국의 국내 정치 일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미국 내 정치 상황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타격을 받은 역사가 반복된 데 따른 ‘학습효과’로 보인다. 가까운 예로 지난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노딜’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회담 당일 미 의회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였다. 코언이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의혹을 폭로하자 북한과의 전향적 합의가 자신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것으로 우려해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회담을 결렬시켰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하노이 노딜 직후인 3월 초 코언 청문회가 노딜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바 있다.

앞서 북한은 1994년 10월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와 제네바 합의를 타결했지만, 2주 후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동력을 잃은 바 있다. 또 북한은 2000년 10월 당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맺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합의했으나 다음달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 정권이 교체되면서 공동 코뮈니케는 사실상 파기되고 말았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법’을 언급하며 협상으로 유도해 놓고선 정작 협상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않으니 재선을 위한 정치적 동기로 북한을 관리하며 협상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때처럼 ‘노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이 판단해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북미 간 불신으로 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제시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한미 간 대화를 통해 북측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관계 현안 중심으로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최근 한 포럼에서 “남북 관계가 자율성을 갖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대로 중재자 역할도 할 수 없다”며 “최소한 남북공동선언 합의사항은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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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9-10-0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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