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면한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졌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지난 22일 차기 대권후보 ‘빅3’로 통하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빈소를 찾았다. 대권후보군 중에서 가장 먼저였다. 격동의 시기인 1980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최 전 대통령을 ‘모신’ 인연 때문이리라. 문상을 마친 고 전 총리는 그러나 상주들과 간단한 인사만 나눈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는 유력 인사들에게 의례적으로 따라붙는 언론사의 약식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상주나 최 전 대통령 측근들과 고인과의 일화 등을 화제 삼아 차 한잔하면서 다시 한번 애도의 뜻을 표시했음에도 말이다. 더구나 고 전 총리는 문상을 위해 구두를 벗는 순간부터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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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前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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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前총리
왜 그랬을까. 당시 청와대 의전수석이었던 정동열씨는 “고인에게 미안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지.”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마도 80년 5·17 때 고 전 총리의 잠적 의혹을 빗대어 한 말 같았다. 당시 의전비서관이었던 신두순씨와 정기옥 전 주 싱가포르대사 역시 비슷한 뉘앙스였다.75세의 고령에다 골수암으로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는 정 전 수석은 4일간 빈소를 꼬박 지켰다.“그것이 어른을 모신 비서관의 도리 아니겠느냐.”고 했다.
자연히 고 전 총리는 정 전 수석을 비롯한 최 전 대통령 측근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게 껄끄러웠을 수 있다. 그를 향한 최 전 대통령 측근들의 기류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배신’이란 말도 꺼냈다. 이는 곧 최 전 대통령의 생각일 수 있다. 그것이 고 전 총리가 문상을 마치자마자 황급히 빈소를 떠난 이유일 게다.
사실 고 전 총리의 5·17 행적은 그에게 악령처럼 따라다니는 사안이다. 고 전 총리도 이 문제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별도의 문건을 만들어 언론에 배포할 정도다. 핵심은 5·17 계엄 확대를 군정으로 판단한 고 전 총리가 군정에 찬성할 수 없어 사표를 냈느냐이다. 고 전 총리가 2003년 2월 참여정부 초대 총리후보로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섰을 때도 5·17 행적은 핫이슈였다. 고 전 총리의 주장과 일부 증인의 주장이 엇갈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 전 총리는 운전사를 시켜 당시 최광수 비서실장을 보좌하던 이송용(작고) 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었다. 서울시장이던 시절에는 당시 정기옥 의전비서관에게 (사표를) 전달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신두순 전 비서관은 청문회 증언에서 “최광수 비서실장은 물론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부터도 사표를 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기옥 전 비서관 역시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대권 행보를 본격화할수록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고 전 총리가 대통령후보가 된다면 예컨대 후보토론회 등에서 이 사안은 단골메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 전 수석은 “괜히 죽은 사람까지 들먹이니 우리로서는 불쾌하다.”면서 “우리쪽에서 어떠한 얘기도 않고 있는데 먼저 나서서 사표 얘기를 꺼내니…”라며 혀끝을 찼다.
비운의 대통령인 고인의 비망록 존재 여부는 그래서 관심이다. 누구 말이 옳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