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경남 통영 청마문학관
유치환 고향 망일봉 기슭에 세워
인근에 부친 약방 등 생가도 복원
중앙우체국 앞 ‘행복’ 시비 눈길
여류시인 이영도와 연서 수천통
만선일보 사설 등 친일 행적 오점


청마문학관에서 내려다본 통영항 동항의 풍경. 유치환은 통영이 배출한 김춘수, 윤이상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 유치환 시, ‘깃발’ 전문


경남 통영 청마문학관 안에 놓인 유치환의 흉상.
청마 유치환의 시다. 대부분의 사람이 국어영역(옛 언어영역)의 시험 지문이나 교과서에서 봤던 그 ‘노스탤지어 시’. 시간이 지나 다시 그의 시를 읽으니 예전에는 미처 볼 수 없던 마음의 우물 하나가 눈을 뜬다. 그네가 공중에 짚어 준 그 이정표대로 따라가다 보니 나의 시원과 고향이 한꺼번에 뒤섞인 우물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그 우물은 땅에 없다. 공중에 떠 있다. 그 무엇도 아닌 ‘노스탤지어’인 까닭이다.


4칸으로 이뤄진 생가 본채의 외관. 오른쪽이 안방, 왼쪽이 부엌이며 가운데 방 2개는 부친이 운영하던 약방으로 돼 있다.
1940년에는 만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에 귀국했다. 충무와 부산, 경주 등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안의중학교의 교장이 됐다. 이후 경주고등학교, 경주여자고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장을 지냈다.


유치환 생가 본채 중 약방의 내부 모습. 유치환 생가는 원래 자리에 복원하기 어려워 청마문학관 인근으로 옮겨 복원됐다.
1967년 2월 13일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부산대학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에 사망했으며, 2월 17일 부산 사하구 하단동 승학산에 묻혔지만 경남 양산시 백운공원 묘지로 이장됐다. 현재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산록에 잠들어 있다.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시를 썼고 끊임없이 후학 양성에 힘을 쏟다가 사후에 다시 거제로 돌아온 셈이다.
그는 그토록 그리던 노스탤지어에 도착한 것일까.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전문


김춘수 시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경주고 교장 시절 조지훈 시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경주고 교장 시절 윤이상 작곡가로부터 받은 편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을 편지로 썼던 이십여 년의 시간에도 그들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이면 한 사람을 향해 강산이 두 번이 더 바뀌도록 편지만을 써 대는가. 훗날 이영도는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는 책으로 청마의 편지 200편을 남겨 뒀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인세는 사회에 기부했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그리움’ 전문


부산남여상 교장 재직 당시 모습.
한때 통영에서 유치환이 수천 통의 편지를 써서 부친 통영 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에 따른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중앙우체국 앞에 ‘행복’의 시비가 세워졌으나 친일 행적이 밝혀지면서 개명이 유보되기도 했다.
문학적인 업적과 시인의 삶의 거리를 어디에서 어느 만큼까지 떼어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일화다. 그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앞으로도 분분할 테지만 우리가 익히 알아 온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그의 시와 삶을 읽는 후대의 몫이 될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네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 한쪽만이 아니듯이, 그리하여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늘어나듯이 말이다. 그 해석과 영탄, 지탄의 몫마저도 시인의 이름이다.


소설가 이은선
청마의 생애와 후대의 해석은 어쩌면 극명하게, 또 다르게는 이렇게나 여여하게 흐른다.
남쪽의 봄에는 에메랄드빛 해안을 거니는 노스탤지어와 사랑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사람의 자리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소설가 이은선
2022-04-0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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