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창고] 선로 귀대기, 말 리어카, 엿장수...그때 그시절의 어린이들 (사진.영상)

[사진창고] 선로 귀대기, 말 리어카, 엿장수...그때 그시절의 어린이들 (사진.영상)

정연호 기자
정연호 기자
입력 2023-05-04 10:41
수정 2023-07-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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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고’는 119년 역사의 서울신문 DB사진들을 꺼내어 현재의 시대상과 견주어보는 멀티미디어부 데스크의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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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복원한 70년대  밝은표정의 어린이들
컬러로 복원한 70년대 밝은표정의 어린이들 79년 서울의 한 동네에서 어린이들이 등넘기를 하며 즐겁게 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신문 DB에서 찾은 흑백사진을 컬러복원 프로그램을 이용해 컬러사진으로 복원했다. 1979. 4. 30 서울신문 사진창고
어린이날을 맞이해 서울신문 사진창고에서 60.70년대 어린이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먹거리나 놀거리는 부족했던 그 시절이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밝고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젠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하는 중년의 나이가 됐을 사진 속 주인공세대가 다음 사진들로 그때를 추억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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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앞에서 입맛만 다시는 어린이들
엿 앞에서 입맛만 다시는 어린이들 1962년 서울의 한 골목에서 어린들이 엿장수의 리어카에 실린 엿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 당시 엿장수의 꽹과리소리는 아이들을 흥분시켰고 아이들은 집에 있는 공병, 고철 등을 들고 나와 엿과 바꿔 먹었다. 때론 고물이 아닌 생필품까지 엿과 바꿔 먹어서 부모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1962년도 서울신문 사진창고
방정환 선생이 결성한 소년운동협회가 ‘소년운동의 선언’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어린이해방선언’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다. 당시 발표된 선언은 다음과 같은 3개의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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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고
사진창고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과 그 결을 같이 해 어린이 인권의 해방에 초점이 맞춰진 선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들이 당시의 선언에 나온 ‘윤리적 압박’과 ‘경제적 압박’에서는 벗어난 듯 하지만 마지막 조항인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는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방과 후 학원으로 내몰려진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학원시간표를 확인하고 정하고 레벨별로 나눠진 학원교실에서는 우정보다는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다.

임규호 서울시의원 “면목역 모아타운 사업시행인가 확정… 최고 37층·959세대 탈바꿈”

중랑구 면목동 모아타운 시범사업지에 속한 면목역 1·2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이 관리처분계획을 포함한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마쳤다. 이번 사업으로 면목동 236-6 일대의 1구역과 1251-4 일대의 2구역 일대에 최고 지상 37층, 총 959세대 규모의 신축 주거단지가 들어설 예정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관련 부서 협의와 주민공람 등을 거쳐 확정된 이번 인가에 따라 차후 이주 준비 절차에 들어선다. 임규호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중랑2)은 “중랑구와 서울시의 협업을 통해 통합심의를 거치며 용도지역 상향과 세입자 손실보상에 연계한 용적률 완화를 일궈냈다”고 밝혔다. 정비구역 안에는 스터디카페와 북카페를 비롯해 문화센터, 키즈카페, 실내체육시설, 돌봄지원센터 등의 주민공동시설이 조성된다. 이와 함께 주변 도로망을 확충하고 보행환경을 쾌적하게 개선하는 사업도 병행 추진된다. 임 의원은 “면목역 일대 모아타운 정비사업을 통해 노후 주거지의 재탄생이 이뤄지고 있다”며, 차후 주민들께서 안정적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이주비 대출 이자 완화 등 정책 보완을 통해 정비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행정 지원을 뒷받침하겠다”고 말
thumbnail - 임규호 서울시의원 “면목역 모아타운 사업시행인가 확정… 최고 37층·959세대 탈바꿈”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아이들의 수 또한 급격히 줄어들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출생.사망통계 잠정결과’에 따르면 1970년에는 출생자 수가 100만명을 넘은 반면 2020년에는 27만명으로 오히려 사망자 수(30만)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 골목 구석구석에서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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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말타기 리어카
추억의 말타기 리어카 1979년 서울의 한 동네에서 어린이들이 이동식 말타기를 타고 있다. 놀이터도 흔치 않아 놀이기구가 많지 않았던 이 시절 가끔씩 동네를 찾는 말타기 리어카는 어린이들에게 최고 인기놀이기구였다. 어린이들이 돈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동안 스프링달린 말을 타며 즐거워했다. 1979. 7. 14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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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솜사탕
귀한 솜사탕 1979년 4월 서울의 한 동네에서 놀던 어린이들이 솜사탕을 먹고 있다. 어린이들의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솜사탕은 인기가 많은 간식이었다. 1979. 4. 30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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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달고나’의 원조
오징어게임 ‘달고나’의 원조 1966년 서울의 한 골목에서 어린이들이 뽑기아저씨가 만들어주는 뽑기를 기다리고 있다. 군것질거리가 귀한 그 시절의 뽑기는 단맛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최근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달고나’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전세계적으로 유행이 되기도 했다. 1966. 1. 24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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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에 귀대기
선로에 귀대기 1979년 서울의 한 철도길에서 한 어린이가 선로에 귀를 대고 기차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은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기차속도가 빠르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 기차선로에 귀를 기울여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70.80년대는 동네 골목 어디에서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1979. 4. 30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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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디든 놀이터
동네 어디든 놀이터 1979년 서울의 한 철도길 옆에서 어린이들이 닭싸움을 하고 있다. 70.80년대는 동네 골목 어디에서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1979. 4. 30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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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것은 공이요 길다란 것은 야구방망이요
둥근 것은 공이요 길다란 것은 야구방망이요 1979년 서울의 한 동네골목에서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야구를 하고 있다. 마땅한 운동기구도 없던 그 시절 둥그런 것은 공이었고 길다란 것은 야구방망이였다. 1979. 5. 3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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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칼이지만 진지함
나무칼이지만 진지함 1979년 서울 한 열차 차고지에서 어린이들이 자신이 만든 나무칼로 칼싸움을 하고 있다. 1979. 4. 30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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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부자들
딱지부자들 1979년 서울의 한 동네에서 어린이들이 딱지따먹기를 하고 있다. 갖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던 동그란 종이딱지는 남자어린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당시 남자어린이들은 분유통이나 종이박스에 가득 들어있던 딱지만 봐도 뿌듯해 했었다. 1979. 5. 3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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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하천에서 물고기 잡기
동네 하천에서 물고기 잡기 1971년 경기도의 한 하천에서 어린이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당시에는 마을 어디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1971. 6. 20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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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 옆의 냉수포차 행렬
한강변 옆의 냉수포차 행렬 1973년 서울의 한강변의 냉수포차의 모습. 지금처럼 한강수영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던 70년대에는 한강 전체가 서울시민의 수영장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한강변 옆에서는 냉수포차가 물놀이가는 어린이들을 유혹했다. 1973. 7. 13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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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시대의 운동회 풍경
베이비붐 시대의 운동회 풍경 1963년 한 국민학교에서 열린 가을운동회에 많은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줄지어 걷고 있다. 이 시기는 전후 베이비붐 시기로 학교나 동네 어디에서든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1962. 10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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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가장 유명한 놀이공원 ‘창경원’
서울의 가장 유명한 놀이공원 ‘창경원’ 1975년 5월 창경원(현재 창경궁)에 모인 행락인파를 항공촬영한 모습이다. 1909년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분으로 궁궐이었던 창경궁 안에 동물을 들여와 동물원을 만들고 서양식 정원과 건물을 세워 만든 것이 ‘창경원’이다. 이후 1980년대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의 창경궁 모습을 되찾았다. 1975. 5월 서울신문 사진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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