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것이 알고싶다]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입력 2004-09-02 00:00
수정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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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요한 순간에 부드러운 숨결을 불어넣어 영원의 시선으로 안착시킨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3일 개봉)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많이 닮았다.어두운 듯하면서도 화사한 색감이 살아있는 화면도 그렇고,생기있으면서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주인공들의 절제된 감정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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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위). 지적이면서도 육감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젊은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이 소녀의 정체를 완벽하게 형상화했다.
베르메르의 대표적 그림인 ‘진주‘는 어둠 속에서 영원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과 고혹적인 자태로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그림을 토대로 한 소녀와 화가의 사랑 이야기를 창작해냈고,영화는 소설의 은밀한 사랑에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은은한 색감을 입혔다.

배경은 1665년 네덜란드 델프트.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16세 소녀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는 화가 베르메르(콜린 퍼스)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둘은 가까워지지만,감정 교류를 눈치챈 그의 아내는 질투에 사로잡힌다.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지만 영화는 결코 격정에 휘말리지 않는다.베르메르가 진주 귀걸이를 걸어주기 위해 귀에 구멍을 뚫는 순간 흐르는 그리트의 한 줄기 눈물,그것이 사랑의 아픔을 묘사하는 최고조다.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그저 머뭇거리다 멀어진다.

절제의 표현이 가져다 주는 여운이 길지만,너무 행동이 없다 보니 베르메르란 캐릭터의 성격도 불분명해졌다.사랑과 예술에 고뇌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나약한 인간으로만 비쳐지는 캐릭터는 힘이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사랑인지 뭔지도 모른 채 수줍게 베르메르 주위만 서성거리는 그리트의 모습은 그림 속 소녀처럼 잘 묘사됐다.

할리우드식 사랑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영화는 걸작 명화처럼 끝난 뒤에도 두고두고 곱씹게 된다.하얗게만 보이는 구름에도 색깔이 있다는 베르메르의 대사처럼,영화는 단조로운 톤이지만 무수한 색깔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덧칠하고 또 덧칠해 생명을 불어넣는 그림의 질감처럼 공들인 영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처럼 행복해지는 영화다.피터 웨버 감독의 데뷔작.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2004-09-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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