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첩보원들… 이보다 웃길 수 없다
오랜만의 첩보영화다. 게다가 코미디이다. 냉전시대가 낳은 최고의 적자는 바로 첩보 영화였다. 제임스 본드로 대표되는 말쑥한 첩보원은 냉전시대가 마치 섹시한 시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제임스 본드 이후 첩보 영화라면 단연 ‘본 시리즈’일 것이다. 섹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뛰고, 또 뛰는 첩보원 제이슨 본은 첩보원의 환상을 날리고 실제와 접촉했다. 설마,‘겟 스마트’를 ‘본 시리즈’와 견주려고? 끄덕끄덕.
‘겟 스마트’는 ‘미스터 빈’의 로완 앳킨슨이 맡았던 ‘쟈니 잉글리쉬’의 엉뚱한 첩보원 계보를 잇고 있다. 둘 다 모두 고급스러운 양복을 빼입고 엉뚱한 짓을 저지르지만 로완 앳킨슨과 스티븐 카렐 사이에는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만큼의 차이가 있다. 일단 스티븐 카렐은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얼굴은 무표정한데 사실상 그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웃음이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형이라는 사실이다. 요원 86은 마취총의 탄환을 삼키고, 신발에 붙은 껌을 떼려다 테러범으로 오인 받는가 하면, 수갑을 풀기 위해 쏜 미니 작살에 온몸을 관통 당한다.
영화의 매력이라면 바로 이 부조화에 있다.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지만 몸으로는 웃기는 백조식 코미디 전략 말이다. 앤 해서웨이와 다른 주인공들이 모두 정극처럼 진지한 연기를 펼치는 것 역시 간헐적 웃음을 증폭시킨다. 로완 앳킨슨이나 짐 캐리가 어떤 영화에서나 ‘튀는’개성적 연출로 각인되었다면 스티븐 카렐은 어떤 영화에서라도 어울릴 법한 무개성의 연기를 보여준다.
스티븐 카렐의 매력이라면 너무도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라는 것일 테다. 이 소시민의 모습은 로완 앳킨슨이 보여주었던 악동 이미지와도 다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요원 99(앤 해서웨이)가 했던 응급탈출 요령을 응용하는 장면은 이 단정한 아저씨의 매력에 충분히 동의하게끔 해준다.9·11 이후 스파이 영화와 재난 영화에 드리워진 테러의 그늘을 웃음의 코드로 전환한 영화, 오랜만에 큰 웃음을 주는 코미디이다.
영화평론가
2008-06-2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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