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공초 문학상] 심사평

[16회 공초 문학상] 심사평

입력 2008-06-07 00:00
수정 2008-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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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霧山) 오현 큰스님께 상을 드리기로 했다. 누구나 공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스님은 우리 시조 시단에서 민족문학의 한 궁궐로 우뚝 서 있는 분이다.

스님의 수상에 용두의 사미로 몇마디 췌언을 붙이고자 한다. 단지 문학상 심사라는 의식의 한 관행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라기보다 스님께 본상을 드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기 때문이다. 바로 본상의 정신적 지주라 할 공초선생의 일생이 무소유를 실천하는 불가의 가르침에 스님의 그것과 너무나 일치하는 바 있어 스님의 수상을 배제하고서는 이 상의 존재의미가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마 지하의 공초선생께서도 그 누구보다 스님의 수상을 환영하시리라 믿는다.

그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에 앞서 스님의 문학이 우리 현대 시단에 끼친 공적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로 시조시형에 선시(禪詩)를 도입한 선구자가 스님이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 근현대 시사(詩史)에서 자유시의 경우는 일찍이 한용운과 같은 선사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시조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 훨씬 후 무산 큰스님이 등장하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시조가 세계문학 사상 유례 없이 장장 600년의 전통을 계승한 우리 자랑할 만한 민족문학의 장르이며 근대 이전에는 오로지 유가(儒家)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시조와 불교세계관의 이같은 융합과 그것이 이루어 놓은 문학적 성취는 간단한 비평문만으로는 언급할 수 없는 문학사적 일대 사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의 수상은 이 하나만으로도 그 필연성을 지녔다고 할 것이다.

이번 수상작인 ‘아지랑이’ 역시 형식과 내용의 적절한 조화 위에서 삶의 궁극에서 얻은 깨달음을 천착하고 있다. 가히 선사의 열반송을 듣는 듯하다. 시조이면서 시조를 초월하고, 자유시이면서 형식을 존중하는 스님의 남다른 문학적 감성이 그 오랜 수행의 정신적 깊이와 결합함으로써 잘 빚은 상징의 청자 항아리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 이근배 공초숭모회 회장

■ 임헌영 중앙대 교수
2008-06-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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