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그것은 현대사회 저항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다. 그러나 그 해방은 이뤄졌는가. 스탈린주의·마오주의까지 갈 것 없이 북한체제는 이미 이 물음에 대한 100점짜리 답안을 제출하고 있다. 기존의 억압적인 권력을 붕괴시키고 너희들을 참되게 살게 해 주겠다던 약속은 ‘또 다른 억압’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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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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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교수
우리는 결국 어떤 해방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것은 충만한 자유가 아니었을까. 정수라의 노래처럼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는’ 충만한 자유.‘미시권력’과 ‘지식-권력’ 문제를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자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말년에 가서야 겨우 내놓은 대답도 바로 이 ‘자유’였다.
그러나 이 말 역시 모호하긴 매한가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유를 실현할 것이냐는 반문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반문은 결국 다시 자유의 문제를 해방의 문제로 이끌 수밖에 없다. 모든 개인이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 이상, 자유에서 사회적 실천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다.
이는 최근 한국 상황에서도 유효한 질문이다. 좌파정권담론(이게 맞는지는 젖혀두고)이 유포되더니 그 대안이랍시고 ‘자유’가 판치는 상황이라서다. 어느덧 사회적 실천을 고민만해도 ‘올드라이트’,‘홍위병’이라는 덧칠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가 택한 전략은 해방과 자유를 한 데 묶는 것이다. 묶을 끈은 바로 ‘소내(疎內)’와 ‘포월(匍越)’. 김 교수는 자신이 창안한 이 개념으로 회화·영화·건축·춤·미학 전반을 분석한 ‘포월과 소내의 철학’(문학과 지성사 펴냄)을 냈다.
포월과 소내는 알려졌다시피 각각 초월과 소외를 극복하는 개념이다.‘소외’와 ‘초월’은 기존 체제에서 배제당했다는데서 오는 슬픔·분노와 그 때문에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버리겠다는 자세를 뜻한다. 그러나 소내와 포월은 그 슬픔과 분노를 내 안의 긍정성으로 바꾸고, 아무리 꼴보기 싫은 현실이라고 부둥켜안고 부벼대자고 제안한다.‘소외된 이들의 초월’이 아니라 ‘소내하는 이들의 포월’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들고 있기에 프랑스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김 교수는 서구이론을 전범처럼 떠받들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과 사물’ 도입부에서 푸코가 열심히 분석하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대해, 저자는 왜 그런 분석이 잘못됐는지 비판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6-07-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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