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는 ‘실제’라는 이유만으로도 적잖은 감동을 안긴다. 국내외 영화계에서 이같은 영화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것은 아마도 감동에 목마른 시대 탓인지도 모른다. 올해 아카데미상에도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가 많은 부문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가 ‘피터팬’을 써가는 과정을 담아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맹인 가수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려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레이’가 25일 나란히 국내 관객을 찾는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실존인물을 다뤘지만 전기영화는 아니다.‘네버랜드를 찾아서(Finding Neverland)’는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가 ‘피터팬’을 완성해가는 특정시점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 실화를 포착해내는 시선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이 실렸다. 상상력의 힘을 잃어버린 채 생활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20세기초 영국 런던.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 제임스(조니 뎁)에게 어느날 젊은 미망인 실비아(케이트 윈슬렛)와 그녀의 네 아들이 다가온다. 그날부터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제임스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실비아와도 인간적인 사랑을 싹틔운다. 아이들과의 놀이 속에서 다시금 상상력을 키우는 제임스.“연극은 즐기는 건데 비평가들이 심각하게 만들었다.”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모험극을 쓰기 시작한다. 한편 실비아와 제임스 사이에는 나쁜 풍문이 떠돌고, 실비아는 시름시름 앓는다. 제임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네버랜드’로 실비아를 초청한다.
영화는 ‘한 예술가와 한 가족 사이의 따뜻한 사랑’이라는 기둥줄기 사이에 다양한 의미를 새겨놓는다. 사실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은 제임스 자신이다. 그는 현실의 자리에 조금씩 상상력을 내줘야만 하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팍팍한 삶을 살던 한 가족에게 상상력으로 행복을 불어넣는다. 결국 그 상상력이 예술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예술에 대한 찬가라고 할 만하다. 동시에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말한다.
연기파 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매력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영혼이 언제든 튀어나올 것 같은 조니 뎁과, 강인한 영혼을 가진 어머니 역의 케이트 윈슬렛은 뛰어난 앙상블을 선사한다. 흥행에 실패할까 걱정하면서도 밀어주는 든든한 후원자인 제작자 찰스 역엔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했다.‘몬스터볼’의 마크 포스터 감독.12세 관람가.
#‘레이’
전형적인 전기영화의 틀을 따르고 있는 ‘레이(Ray)’를 비범하게 만드는 건, 실존인물 레이 찰스와 그의 음악이 가진 힘이다. 여기엔 이미 세상을 뜬 이 천재 음악가의 굴곡진 삶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완벽하게 재연한 배우 제이미 폭스의 공이 컸다.
영화는 레이 찰스의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군데군데 어린시절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자칫 지루해질 법한 일대기에 강약의 호흡을 불어넣었다. 흑인과 맹인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딛고 성공하지만, 깊은 그늘을 안고 살았던 한 인간의 이중성도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 관객을 더없이 깊은 영혼의 바다로 초대한다.
일곱살 때 시각을 잃은 레이는 “마음의 장애인이 되어선 안 돼.”라는 어머니의 교육 덕에 세상과 용감하게 맞선다.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승승장구하는 레이. 미인인 델라(게리 워싱턴)와 결혼해 가정도 꾸리고, 음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더 부러울 게 없는 듯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를 둘러싼 환한 빛 곁엔 언제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어린시절 빨래통에 빠져 죽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깊은 늪이 되어 그를 괴롭혔고, 어둠의 두려움은 그를 마약중독자가 되게 했다.
영화는 이런 이중적인 레이 찰스의 모습을 그의 음악과 함께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의 노래들이 깊은 고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삶의 배경음악 정도로만 느껴진다는 점이다. 후반부에 들어 마약 중독을 힘들게 극복한 뒤 그를 괴롭혀 왔던 기억과 화해하는 모습도 영화를 뻔한 ‘휴먼 전기영화’로 전락시킨다.
그럼에도 레이 찰스가 환생한 것처럼 보이는 연기와 음악들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한 영혼의 거친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레이 찰스는 지난해 여름 74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작 앨범 ‘지니어스 러브스 컴퍼니’는 최근 그래미상에서 8개 부문을 휩쓸었다.‘사관과 신사’의 테일러 핵포드 감독.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
#‘네버랜드를 찾아서’
실존인물을 다뤘지만 전기영화는 아니다.‘네버랜드를 찾아서(Finding Neverland)’는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가 ‘피터팬’을 완성해가는 특정시점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 실화를 포착해내는 시선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이 실렸다. 상상력의 힘을 잃어버린 채 생활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20세기초 영국 런던.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 제임스(조니 뎁)에게 어느날 젊은 미망인 실비아(케이트 윈슬렛)와 그녀의 네 아들이 다가온다. 그날부터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제임스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실비아와도 인간적인 사랑을 싹틔운다. 아이들과의 놀이 속에서 다시금 상상력을 키우는 제임스.“연극은 즐기는 건데 비평가들이 심각하게 만들었다.”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모험극을 쓰기 시작한다. 한편 실비아와 제임스 사이에는 나쁜 풍문이 떠돌고, 실비아는 시름시름 앓는다. 제임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네버랜드’로 실비아를 초청한다.
영화는 ‘한 예술가와 한 가족 사이의 따뜻한 사랑’이라는 기둥줄기 사이에 다양한 의미를 새겨놓는다. 사실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은 제임스 자신이다. 그는 현실의 자리에 조금씩 상상력을 내줘야만 하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팍팍한 삶을 살던 한 가족에게 상상력으로 행복을 불어넣는다. 결국 그 상상력이 예술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예술에 대한 찬가라고 할 만하다. 동시에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말한다.
연기파 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매력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영혼이 언제든 튀어나올 것 같은 조니 뎁과, 강인한 영혼을 가진 어머니 역의 케이트 윈슬렛은 뛰어난 앙상블을 선사한다. 흥행에 실패할까 걱정하면서도 밀어주는 든든한 후원자인 제작자 찰스 역엔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했다.‘몬스터볼’의 마크 포스터 감독.12세 관람가.
#‘레이’
전형적인 전기영화의 틀을 따르고 있는 ‘레이(Ray)’를 비범하게 만드는 건, 실존인물 레이 찰스와 그의 음악이 가진 힘이다. 여기엔 이미 세상을 뜬 이 천재 음악가의 굴곡진 삶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완벽하게 재연한 배우 제이미 폭스의 공이 컸다.
영화는 레이 찰스의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군데군데 어린시절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자칫 지루해질 법한 일대기에 강약의 호흡을 불어넣었다. 흑인과 맹인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딛고 성공하지만, 깊은 그늘을 안고 살았던 한 인간의 이중성도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 관객을 더없이 깊은 영혼의 바다로 초대한다.
일곱살 때 시각을 잃은 레이는 “마음의 장애인이 되어선 안 돼.”라는 어머니의 교육 덕에 세상과 용감하게 맞선다.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승승장구하는 레이. 미인인 델라(게리 워싱턴)와 결혼해 가정도 꾸리고, 음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더 부러울 게 없는 듯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를 둘러싼 환한 빛 곁엔 언제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어린시절 빨래통에 빠져 죽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깊은 늪이 되어 그를 괴롭혔고, 어둠의 두려움은 그를 마약중독자가 되게 했다.
영화는 이런 이중적인 레이 찰스의 모습을 그의 음악과 함께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의 노래들이 깊은 고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삶의 배경음악 정도로만 느껴진다는 점이다. 후반부에 들어 마약 중독을 힘들게 극복한 뒤 그를 괴롭혀 왔던 기억과 화해하는 모습도 영화를 뻔한 ‘휴먼 전기영화’로 전락시킨다.
그럼에도 레이 찰스가 환생한 것처럼 보이는 연기와 음악들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한 영혼의 거친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레이 찰스는 지난해 여름 74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작 앨범 ‘지니어스 러브스 컴퍼니’는 최근 그래미상에서 8개 부문을 휩쓸었다.‘사관과 신사’의 테일러 핵포드 감독.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
2005-02-1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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