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동부 파푸아주(州) 의 분리 독립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AP통신은 “파푸아 주민, 활동가, 학생 등 600여명이 ‘파푸아에 자유를’이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쌓아 주의회로 가는 길을 차단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시위대는 “인도네시아의 파푸아 지배를 허용한 1969년 국민투표 자체가 속임수였다.”고 주장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으나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파푸아의 독립 요구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제2차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독립을 허용했다. 네덜란드는 그러나 자원이 풍부한 파푸아에 대한 점령은 계속했다. 미국은 1969년 네덜란드를 설득,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시작됐지만 투표 결과가 조작됐다는 비판이 끊임 없이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주민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파푸아의 자치권 확대를 약속했다. 또 이곳에서 채굴되는 금, 구리 등 자원 수입금 가운데 파푸아 몫을 늘렸다. 지명도 인도네시아식 이름인 ‘이리안 자야’에서 파푸아로 돌려놨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AP통신은 “파푸아 주민, 활동가, 학생 등 600여명이 ‘파푸아에 자유를’이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쌓아 주의회로 가는 길을 차단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시위대는 “인도네시아의 파푸아 지배를 허용한 1969년 국민투표 자체가 속임수였다.”고 주장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으나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파푸아의 독립 요구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제2차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독립을 허용했다. 네덜란드는 그러나 자원이 풍부한 파푸아에 대한 점령은 계속했다. 미국은 1969년 네덜란드를 설득,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시작됐지만 투표 결과가 조작됐다는 비판이 끊임 없이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주민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파푸아의 자치권 확대를 약속했다. 또 이곳에서 채굴되는 금, 구리 등 자원 수입금 가운데 파푸아 몫을 늘렸다. 지명도 인도네시아식 이름인 ‘이리안 자야’에서 파푸아로 돌려놨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08-10-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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