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나라현 아스카무라 남서쪽 가즈마야마 고분지대에서 백제 왕족의 분묘로 추정되는 호화고분이 발견됐다고 아스카무라 교육위원회가 1일 발표했다.
가즈마야마 고분 지대에는 다카마쓰쓰카를 비롯, 일왕족급 고분이 몰려있어 일본판 ‘왕들의 계곡’으로 불린다.
이번에 발견된 고분은 백제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판석(板石)을 벽돌처럼 쌓아 만든 석실을 갖춘 것이 특징.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뤄 서기 660∼680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옻칠한 목관 파편도 출토돼 피장자가 일본 왕족이거나 일본에 머물렀던 백제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고분 조성 시기에 사망한 일본 왕족이 없어 백제 왕족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석실의 일부는 1361년 난카이대지진때 무너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 변의 길이가 24m인 2단축성식 방분(方墳)으로 고분지대 구릉 남쪽을 동서로 100m, 높이 10m 규모로 깎아 평지를 만든 후 조성된 것 같다.
분구(墳丘)는 높이 10m 규모의 3단구조로 맨 밑단은 지진때 무너진 흔적이 남아 있다. 두 번째 단 한 변의 길이는 24m였고 맨 윗단에 안치한 석실은 두께 5㎝, 폭 20㎝, 길이 30㎝의 널빤지 모양의 결정편암을 쌓아 올려 조성했다.
석실의 규모는 폭 1.8m, 높이 2m, 길이는 5m 이상이다. 바닥 이외의 부분은 회칠을 했다. 판석을 쌓아올린 석실은 백제 왕묘에서 흔히 보인다.
피장자의 나이는 50대 남성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미 도굴된 듯 부장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와카미 구니히코 고베야마테대 교수는 631년 부친인 백제왕 선광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왔다가 674년 사망한 백제왕 창성(昌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선광, 창성 부자는 660년 백제가 멸망하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taein@seoul.co.kr
가즈마야마 고분 지대에는 다카마쓰쓰카를 비롯, 일왕족급 고분이 몰려있어 일본판 ‘왕들의 계곡’으로 불린다.
이번에 발견된 고분은 백제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판석(板石)을 벽돌처럼 쌓아 만든 석실을 갖춘 것이 특징.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뤄 서기 660∼680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옻칠한 목관 파편도 출토돼 피장자가 일본 왕족이거나 일본에 머물렀던 백제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고분 조성 시기에 사망한 일본 왕족이 없어 백제 왕족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석실의 일부는 1361년 난카이대지진때 무너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 변의 길이가 24m인 2단축성식 방분(方墳)으로 고분지대 구릉 남쪽을 동서로 100m, 높이 10m 규모로 깎아 평지를 만든 후 조성된 것 같다.
분구(墳丘)는 높이 10m 규모의 3단구조로 맨 밑단은 지진때 무너진 흔적이 남아 있다. 두 번째 단 한 변의 길이는 24m였고 맨 윗단에 안치한 석실은 두께 5㎝, 폭 20㎝, 길이 30㎝의 널빤지 모양의 결정편암을 쌓아 올려 조성했다.
석실의 규모는 폭 1.8m, 높이 2m, 길이는 5m 이상이다. 바닥 이외의 부분은 회칠을 했다. 판석을 쌓아올린 석실은 백제 왕묘에서 흔히 보인다.
피장자의 나이는 50대 남성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미 도굴된 듯 부장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와카미 구니히코 고베야마테대 교수는 631년 부친인 백제왕 선광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왔다가 674년 사망한 백제왕 창성(昌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선광, 창성 부자는 660년 백제가 멸망하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taein@seoul.co.kr
2005-12-03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