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퇴계도 성묘가 힘들었다

[씨줄날줄] 퇴계도 성묘가 힘들었다

박상숙 기자
박상숙 기자
입력 2026-09-22 23:54
수정 2026-09-23 00:5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성묘에는 정성만큼이나 품이 든다. 막히는 길을 뚫고 산을 오른 뒤 벌초를 하고, 벌과 뱀도 피해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벌초하다 예초기에 다치고 벌에 쏘여 구급대 신세를 지는 사고도 잇따른다. 추석을 앞둔 지난 주말에도 전국 공원묘지에는 혼잡을 피해 미리 조상을 찾으려는 성묘객이 몰렸다.

500여 년 전에도 사정은 비슷했나 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개한 ‘퇴계선생언행록’에는 퇴계의 제자 김부륜이 여러 묘소를 돌며 제사를 지내다 보면 몸이 지쳐 정성과 공경이 흐트러진다며 재실에서 여러 조상의 제사를 함께 지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고 일상의 예법을 누구보다 중시한 퇴계였지만, 답은 의외로 유연했다. “무방하다.” 깨끗한 곳에 제단을 따로 마련하는 것에 대해선 “더욱 좋다”고 했다. 퇴계는 사람들이 묘제를 지낼 때 반드시 묘소를 찾는 것이 원래 예법은 아니라고 했다. 제사상 가장자리의 대구포가 제관의 옷자락에 자꾸 걸려 떨어지자 가운데로 옮기게 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예의 형식보다 그 뜻과 사람의 형편을 먼저 본 셈이다.

오늘날 장묘문화는 크게 달라졌다. 국내 화장률은 94%에 이르지만 묘지는 283.3㎢나 된다. 여의도 약 98개를 합친 넓이이자 서울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다. 도시화와 핵가족화, 고령화로 산소를 돌볼 사람은 줄고 벌초 대행과 온라인 성묘도 익숙해졌다. 안동의 여러 종가도 흩어진 묘소를 일일이 찾는 대신 한곳에서 함께 제사를 지내고, 퇴계 종가도 여러 조상을 한자리에서 모신다.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에서도 형식에만 얽매이지 않은 지 오래다.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몇 대까지 묘소를 찾아야 하는지, 벌초를 직접 해야 하는지를 두고 집집마다 고민이 생긴다. 퇴계의 답은 지금 들어도 놀랄 만큼 현실적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옛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그 뜻을 오래 이어 갈 방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2026-09-23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