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농민은 준공무원이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농민은 준공무원이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6-11-07 18:16
수정 2016-11-0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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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유럽연합(EU)은 공동농업정책(CAP)을 편다. 1957년 출범한 EU 모체 유럽공동체는 농업에 대해 개별 국가의 독립 정책보다 전체 회원국의 공동 정책에 점점 공감했다. 그 결과 1962년 CAP를 시작했다. 공동체의 식량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경쟁적 독립 정책보다 협력적 공동 정책이 낫다고 판단했다.

처음 CAP는 주요 품목별 목표 가격을 설정하고 가격 지지를 통해 생산을 장려했다. 가격 지지 정책은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과잉생산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1992년 품목별 목표 가격을 낮추고 부분적 휴경 의무를 도입했다. 그 결과 떨어지는 농가 소득에 대해서는 하락 소득 일부를 지급하는 소득보상 직접지불제(직불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직불제가 여전히 특정 품목 생산과 연계됐기 때문에 생산 왜곡은 계속됐다. 마침내 2003년 생산 연계를 끊었다. 품목을 불문하고 과거 특정 기간의 전체 영농면적과 그때 받았던 직접지불액(직불액) 총합을 기준으로 농가마다 앞으로 받을 직불액을 미리 정해 주었다. 농가는 일정한 기본소득을 지급받고 생산 결정은 시장에 따르게 됐다.

2013년 CAP를 다시 개혁해 농업 직불제와 농촌 개발을 두 기둥으로 삼았다. 농업 직불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따라 몇 가지 목표를 세우고 목표별 직불제로 바꾸었다. 기본소득은 여전히 강조하면서 생태·환경 목표를 보완했다. 그 밖에 청년 영농 지원, 오지 관리, 특수농업 지원, 소득 불균형 해소, 소규모 농가 지원 등 다양한 목표를 추가하고 목표별 직불제를 도입했다. 이렇게 정책 수단은 생산 연계 없는 직불제로 통일하면서 농업의 다양한 다원적 기능을 강조했다. 한편 농촌 개발은 회원국별 농촌의 특수성을 고려해 회원국에 자율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시했다.

현재 CAP는 EU 전체 예산의 40%를 지출하는 최대 공동 산업정책이다. 유럽의회가 승인한 2015~20년 농업 직불제와 농촌 개발의 연평균 예산 상한을 보면 각각 420억 유로(약 53조원), 140억 유로(약 18조원)다. 농업 부문에 대규모 공적 재정을 투입한다. 특히 직접적 농가소득 지원인 직불제가 재정 투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농정개혁을 거듭할수록 농민의 공적 의무를 강조한다. 사실 2003년 개혁부터 직불제 지급 조건으로 농민이 지켜야 할 엄격한 기준을 설정했다. 환경보호, 식품안전, 동식물 위생, 동물복지, 농지 적정상태 유지 등과 관련된 세밀한 기준을 마련하고 농민에게 지키라고 요구한다. 실제로 EU는 농민의 기준 준수에 대한 지도·감시·통제를 위해 첨단과학기술 기반 통합정책관리시스템(IACS)을 수립했다. 회원국은 개별 실정에 맞는 적절한 주무 기관을 설치하고 IACS를 운용해야 한다. 회원국의 IACS 운용 상황은 EU의 수시 감사 대상이다. 감사 결과에 따라 직불액 삭감·반환·배제라는 엄한 조치가 따른다. 회원국과 개별 농가는 늘 긴장한다. 지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 때 영국 농민 다수가 찬성으로 기운 것이 IACS의 엄격함 때문이라고 할 정도다.

지난달 말 이탈리아에서 IACS 집행 현장을 경험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다음으로 재정 수령 규모가 크고 IACS 운용을 선도하는 국가다. 정부 51%, 민간 49% 지분 구조를 가진 공공민간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IACS를 운용한다. 농민의 기준 준수 점검에 항공·정보통신·기계기술 등 첨단과학 기술을 사용한다. 현장을 안내한 국가농업과학경제연구원의 보나티 연구원은 “유럽 농업은 공적 재정에 의존하는 공공산업이고 농민은 이제 준공무원이다. 따라서 높은 기준 준수 의무를 가진다”는 말로 상황을 표현했다.

CAP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먼저 품목연계 지원 정책은 지속될 수 없음을 보였다. 한국 쌀 정책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다음으로 농업은 농산물 생산을 넘어 국민이 원하는 다원적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능은 시장이 보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적 재정을 지불한다. 다원적 기능의 충실한 수행이 농업에 대한 정부 지원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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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농업의 공공성과 농민의 공직성이 증가하고 농민은 엄격한 기준 준수를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한국 농업이 지금 그리로 간다.
2016-11-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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