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순 미국이 대테러 특수전함 ‘뉴욕’호를 진수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는 순간, 서울 숭례문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에 탄 숭례문을 굳이 미국의 대테러 전함에 끌어다 붙인 생뚱맞은 생각의 끝자락이 가물거렸다. 이를 몇차례 곱씹어 내린 결론은 9·11테러 때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잔해 속의 고철 일부가 바로 ‘뉴욕’호 선체에 들어갔다는 대목이 걸렸던 것이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 노스럽그루먼 조선소가 건조한 전함에는 세계무역센터 잔해에서 나온 고철 7.5t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전함의 뱃머리에는 ‘9·11을 잊지 말자’는 글귀를 새겼다니,2001년 북반구의 초가을 맑은 날에 벌어진 비극을 어찌 기억하지 않겠는가. 이를 뱃머리에 새겨 되살린 미국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계무역센터가 불꽃에 휩싸여 사라진 지 벌써 7년이나 되어,110층 쌍둥이빌딩은 오간 데가 없다. 마치 우정을 노래한 19세기 미국의 시인 롱펠로의 시어(詩語)에 나오는 화살처럼, 거대한 빌딩은 날아갔다. 그러나 ‘뉴욕’호 선체에 들어간 몇덩이 쇠는 민중의 기억을 붙잡아 두었다. 그래서 롱펠로 시에서,‘친구가 부른 노래’ 같은 슬픈 기억이 여러 사람들 마음 속에 여태 살아 숨쉬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초라한 몰골을 드러낸 지 겨우 달포 남짓한 서울 숭례문은 너무 외롭다. 숭례문이 불에 타 비명에 스러진 바로 다음날 굴착기를 불러 뼈대를 마구잡이로 끌어모았고, 이를 내다버렸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성한 서까래 하나라도 건져, 숭례문 복원에 쓰거나 따로 갈무리했어야 옳았다. 우리네처럼 목조 건축물을 국가 문화재로 삼아 온 일본에서는 1949년 불에 탄 호류지(法隆寺) 금당이 국보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국보로 다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불에 탄 금당의 기둥과 벽화를 남겨 계속 보존·연구해온 저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불은 때로 파괴와 폭력, 약탈을 불러온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악(惡)이다. 그래서 테러의 수단으로 악용한 불은 더욱 무섭다. 생뚱맞은 생각에서 한군데로 싸잡은 세계무역센터와 숭례문 사건은 테러가 저지른 비극적인 종말이다. 불처럼 뜨거운 열(熱)과 고리를 맺었을 때 일어나는 모든 반응에는 엔트로피가 늘어난다고 한다. 무질서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엔트로피다. 이 역시 가치 혼돈에서 비롯한 테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불은 본디 성스러움의 중심이었다.‘구약성서’ 신명기를 보면, 불을 여호와 하느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불을 성스럽게 여겼던 터라, 불상 머리 뒤쪽에는 반드시 불꽃무늬를 새겼다. 더구나 이란의 조로아스터는 불의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를 으뜸으로 섬긴 종교다.
인류가 불을 제 곁으로 끌어들여 쓰기 시작한 시기는 약 150만년 전이다. 진화론자들이 이른바 호모 에렉투스라는 딱지를 붙인 고인류가 맨 먼저 불을 삶 속으로 끌어왔는데, 케냐 리프트 계곡의 채소완자 유적에서 벌써 불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불에 탄 흙과 더불어 화덕으로 추정되는 돌무지가 이 유적에서 드러났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이만큼에서 불의 역사를 접고,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올 차례가 되었다. 인류가 그토록 성스럽게 여긴 불이 오늘날 방화 전과자의 손을 거쳐 대한민국 국보 제1호를 깡그리 소진시킨 현실이 슬프다. 그런데 더듬이가 부실한 탓인지는 몰라도, 여법한 보호책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마침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재연구소가 일본 교토의 리쓰 메이칸대 문화유산방재추진기구와 ‘역사도시를 지키는 방재연구 거점 교류’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민간 차원에서라도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할 작은 주춧돌을 먼저 놓아주기를 바란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2008-03-28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