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 용어에 로보토미(Lobotomy)라는 시술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전두엽절제술’. 인간의 두뇌에서 전두엽을 제거하는 수술로 우울증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두개골을 옆에서 구멍 내어 가느다란 칼을 넣은 다음 신경속(神經束)을 절단함으로써 우울증을 없앨 수 있다. 이 시술은 1949년 노벨생리학·의학상까지 받는 등 한때 서양에선 크게 성행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지금은 여러 부작용이 보고돼 시술 빈도가 크게 줄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이 시술을 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날 수 있을 성싶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54.9%)이 울분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였다. 지난해 6월 조사(49.2%) 때보다 5.7% 포인트나 상승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울분 수준은 공정에 대한 신념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문항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69.5%였다. 공정에 대한 믿음이 낮을수록 울분 정도는 높았다. 한국의 정치·사회 사안별로 울분의 정도를 측정한 결과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로 울분을 느꼈다는 비율이 85.5%로 가장 높았다.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85.2%),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된 의료·환경·사회 참사’(85.1%)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지난 1년간 더 무너진 공정, 계엄 사태 이후 겪었던 정치·사회적 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정치인들의 ‘막장정치’로 얻은 울분과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로보토미 수술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조사를 총괄한 유명순 교수는 “의료적 노력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 정신건강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국민 부화’만 올리고 치료법은 결국 국민 스스로 알아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종락 상임고문
2025-05-08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