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통령 특별사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 특별사면/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19-12-30 22:58
수정 2019-12-3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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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은 젊고 패기만만한 왕이었다. 고구려, 백제, 가야에 연전연승하며 영토를 넓혀 갔다. 555년 한반도 중부를 모두 신라 땅으로 만들었다. 그해 10월 북한산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우고 특별사면을 베풀어 죄수들을 석방했다.

조선시대에도 왕의 즉위 때 부모를 죽인 흉악범을 제외하고 죄수들을 사면해 줬다. 매우 독특한 특사도 있었다. 태종이 일본으로부터 선물받은 코끼리가 ‘과실치사죄’를 짓자 남해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이후 ‘수초를 먹지 못해 수척해지고 늘 눈물짓는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이 코끼리를 육지에서 살게 하는 특사를 단행했다.

사면은 기본적으로 봉건시대 ‘왕의 특권’이었다. 지친 민심을 다독이는 너그러움과 함께 권력의 지엄함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입헌민주제가 들어선 뒤 그 일부 권한을 민주정에 접목시켰다. 사법부의 권한을 행정부가 침범하는 성격이 있어 삼권분립의 원칙과 맞지 않았지만 예외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제정된 법률은 정부조직법과 사면법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1951년 경남 거창 양민 719명을 무차별 학살한 국군 책임자들에 대해 징역 3년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더니 그마저도 몇 개월 뒤 특사로 면죄부를 줬다.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특사도 국무회의 의결을 받도록 했지만, 이듬해 제3공화국 헌법에서 이 부분을 삭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특사는 대통령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쓰는 권한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퇴임 20일을 앞둔 2013년 1월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이던 최시중, 천신일 등 자신의 최측근을 포함한 특사를 단행해 빈축을 샀다. 독일이 70년 동안 딱 네 번 특사를 한 반면 우리는 박정희 정부 25번, 전두환 정부 13번 등 무려 97번의 특사가 있었다. 법치주의의 뿌리가 얕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당시 뇌물·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특별사면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 논란이 일었던 만큼 대통령의 사면권을 절제해서 쓰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첫 특사로 2017년 12월 서민생계형 사범 중심으로 6444명을 특별사면했다. 지난 2월 삼일절 특사에서도 정치인은 누락시켰다. 그러나 30일 세 번째 특사에서 5174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시키면서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을 넣었다. 야당은 ‘총선용 사면’이라고 반발했다. 대통령 특사의 논란을 잠재우려면 국회에서 사면법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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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tan@seoul.co.kr
2019-12-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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