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아버지의 이름으로/최여경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아버지의 이름으로/최여경 문화부장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입력 2021-07-12 17:36
수정 2021-07-1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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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경 문화부장
최여경 문화부장
15년 전 일이다. 영화계에서 주연급으로 떠오르던 배우를 인터뷰하는데, 소속사가 이런 당부를 했다. “절대 아버지에 대해 물으시면 안 돼요.” 스타 배우인 아버지 이름에 가려질까봐 부담스러워한다는 거다. 정작 하정우는 꽤 자주 아버지를 언급했다. 내친김에 “왜 아버지 얘기를 꺼려 했던 건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친구분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는데 숨긴다고 될 게 아니라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차라리 편하게 그분들과 즐겁게 일하는 배우가 되기로 했다.”

연극 ‘코리올라누스’ 무대에 오른 배우 남윤호 역시 배우 유인촌의 아들이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넘어야 할 산”이었고, “다른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이름을 바꿨다고 고백했다.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열어 가는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을 밝히라”는 말을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그는 유지를 받들어 정치권으로 걸어 들어가 야권 대선주자라는 수식어를 받았다.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었고, 산업화 일꾼이었으며, 가족에겐 든든한 버팀목이다. 중년이 된 아들과 딸에게 여전히 해 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버지라는 위치가 부여하는 책임감을 50년째 갖고 계신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는 소시민이라 해도 작지 않다. 큰 뜻을 품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고, 때로는 후광으로, 때로는 멍에로도 작용한다.

대통령 아버지의 이름값이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이 올가을 뉴욕 조르주 베르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한단다. 아들 바이든의 직업은 변호사다. 작가로선 신인인데도 갤러리 측은 작품이 최고 50만 달러(약 5억 7500만원)를 호가할 거라고 예상했다. 미 정가에선 작품 판매가 대통령을 향한 로비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에선 미디어 아티스트 문준용 작가의 일로 시끌시끌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 서울시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으로 1400만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예술·기술 융합지원으로 6900만원을 받았다는 게 문제가 됐다.

경험으로 보자면 문예위 심사는 녹록지 않다. 심사위원도 풀단에서 임의로 뽑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제각각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네댓 시간을 훌쩍 넘겨 갑론을박한다. 위원들 의견이 하나로 모일 때에야 최종 결정을 한다. 이런 과정 끝에 선정된 거라면 문 작가에겐 그만한 능력과 실력과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대통령 아버지를 둔 탓에 예술가로서 역량을 의심받고, 아버지를 공격할 빌미가 된 듯해 적잖이 억울할 수 있다. 아버지 재임 기간에 예술지원 요청을 피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도 무리한 요구다. 예술이라는 게 일정 기간 쉬었다가 다시 때 되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두고 “재미있다”거나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정신승리법으로 대처하는 건 곤란하다. 차라리 능력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이 나라의 문화예술계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머리를 싸매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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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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