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다시 두 남자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다시 두 남자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입력 2020-01-30 17:34
수정 2020-01-31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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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와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

익숙지 않은 이 두 남자는 영국의 수상을 지낸 인물들이다. 오랜 앙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글래드스턴은 옥스퍼드 출신의 진지하고 지적인 사내였다. 디즈레일리는 유대인, 곧 이방인이었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소설가를 꿈꾸던 남자였다. 일화 하나.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이 어느 날 이 두 남자와 저녁을 함께 했다. “글래드스턴씨 옆에 앉으니, 그가 영국에서 가장 지적인 남자라 생각되더군요. 잠시 후 디즈레일리씨 옆에 앉으니, 내가 영국에서 가장 지적인 여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두 남자의 차이를 이보다 더 명확히 꼬집긴 어려워 보인다.

1852년 천둥 번개가 치던 밤, 재무장관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야심 찬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하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재치 있는 연설로 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그가 제자리를 찾을 즈음 글래드스턴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더 현란한 웅변가였다. 예산안은 산산조각 났다. 디즈레일리는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자로 글래드스턴이 지명됐다. 두 남자의 싸움이 공개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소 유치할 때도 있었다. 1859년 디즈레일리는 지인을 통해 글래드스턴이 코르푸섬의 고등판무관 직책을 맡도록 유혹했다. 글래드스턴의 지중해에 대한 로망을 노린 것이다.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는 즉시 의석을 잃는다는 것을 글래드스턴은 뒤늦게 깨달아야 했다.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이 둘의 다툼에 따라 영국의 정세가 들썩이고 바뀌었다. 1866년 글래드스턴은 선거권을 넓힐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한다. 디즈레일리는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1867년 보수당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자유당의 글래드스턴보다 더 진보적이고 영리한 선거 개정법안을 내고 이를 통과시킨다. 디즈레일리는 노동자와 서민의 영웅으로 올라섰다.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은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주도한 인물들로 영국에서 최고의 총리들로 기억된다(디즈레일리는 두 번, 글래드스턴은 네 번 수상을 지냈다). 다툼이라 하기엔 수준이 높았다. 산업혁명 와중 빈곤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을 위한 개혁으로 대영제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확고히 한 위인들이다. 서로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민심에 귀 기울인 점이 같았고, 철저히 국익을 보호한다는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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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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