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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談餘談] 아동성폭행범에게 고함/백민경 사회부 기자

[女談餘談] 아동성폭행범에게 고함/백민경 사회부 기자

입력 2010-07-10 00:00
업데이트 2010-07-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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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경 사회부 기자
백민경 사회부 기자
“차를 여기다 대주세요. 취재차량이라서 누가 보면….” 한 아동성폭행 피해 어린이를 만나러 간 터였다. 약속장소에 혼자 나온 아이 아버지의 말이었다. ‘그렇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는 “나가라고 해.”였다. 화난 듯한 목소리였다. 막연하게 마음을 열어 주길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

조금 열린 문틈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살짝 마음이 열린 아이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장난도 쳤다. 밖에 나가 쇼핑도 했다. 기사를 위해 아이를 만나러 간 내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져 목이 잠기기도 했다.

몇 년이 흐른 사건인데도 아이는 여전히 아파했다. 중년 남성이 다가오면 내 쪽으로 붙어서 걸었다. 뉴스도 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 언론에 난 자기를 알아볼까봐 늘 불안해했다.

‘이렇게 어린데, 이렇게 예쁜데….’ 기자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가슴이 시렸다.

결국 기사는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아이에게 폐가 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평생을 지울 수 없는 심신의 상처, 가족들의 아픔, 계속되는 공포와 악몽. 피해자를 통해 본 아동 성폭행은 그렇게 끔찍한 범죄였다.

문제는 불행하게도 이런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제2의 조두순·김길태·김수철이 끊이지 않는다. 어린 피해자들만 고통 속에서 잊혀져 간다. 그 작은 몸집에 아로새겨진 거대한 상처를 우리가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대책은 겉돌기만 한다. 장안동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초등학생 딸을 둔 한 지인은 최근 발찌를 찬 남성이 학교 근처에 나타나 학부모들이 모두 학교로 달려나오는 소동이 있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서운 세상이다.

이제 범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술을 핑계로, 세상을 변명 삼아 어린 아이에게 저지른 그 범죄는 평생을 다 바친 뉘우침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일이라고.

범인들은 그렇게 영혼이라도 구원받고 싶겠지만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어떻게 구원받아야 하나. 막막한 나날이다.

white@seoul.co.kr
2010-07-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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