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노동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그렇게 되면 노조와 사용자의 관계는 물론 노조와 근로자들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지금은 한 사업장에 노조가 만들어지면 다른 노조를 만들 수 없어 근로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기존 노조에 가입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근로자들이 노조를 선택, 가입할 수 있다. 또 노조전임자가 사용자에게 급여를 받고 조합활동을 했지만 이제 그 급여를 조합원이 부담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계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반대하고, 재계는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의 시행을 13년간 유예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사용자는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주는 게 조합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는 반면, 노조는 ‘사용자로부터 돈 받으면서 사용자와 투쟁하는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노동법을 그대로 시행하면 우리 노사관계와 노동조합의 수준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무조건 반길 상황은 아니다. 노조가 난립돼 노조끼리나 노사간 갈등이 커지고 단체교섭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노조의 재정이 빈약해 조합 활동도 위축될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단체교섭 창구를 단일화하고 전임자의 임금지급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을 개정하려는 듯하다. 이런 대안이 노사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 같지만 국회 통과가 어려워 법이 그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노동법 개정에 노사 합의의 가능성이 적은 데 있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서 노사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본심이 다른 데다 노사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경우 괜히 새 제도를 도입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고 불만을 느끼고 있고 불안정한 경우 새 질서를 만드는 계기로 삼으려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
복수노조는 허용되는데 교섭창구 단일화가 안 돼 사용자가 복수노조들과 각각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 반면, 노조는 전임자의 임금을 조합비에서 전액 부담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이제라도 솔직히 속마음을 밝히고 시급히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노사가 반대하면 정부가 법 시행을 또 유예할 것이라는 낙관적 과신에 빠진 데 있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빠른 시일 안에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확고하게 밝혀 노사가 대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회 분위기상 법 개정이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 복수노조와 자율교섭,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시행에 따른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구체안을 준비해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2009-09-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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